홍익대학교 2020-2학기 에세이 쓰기 대회 장려상 수상작
때는 2020년 여름. 2학기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 곁에 있었다. 학교에 다니지만, 홍대에는 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참으로 오랜만에 홍대입구역에 내렸을 때는 익숙한 여행지를 다시 방문한 느낌이었다. 9번 출구 앞은 여전히 북적였지만, 예전처럼 외국인까지 북적이던 다소 이국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출구 계단을 다 올라오자마자 나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높은 빌딩만큼이나 커다란 크기였던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의 홍보 현수막이었다. 주연 배우의 얼굴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고, 이상한 젤리들이 얼굴과 어깨에 붙어 있는 그런 현수막이었다.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주변 친구들은 다 하고 있다는 넷플릭스 구독을 하지 않은 상태였고, 저 드라마 한 편 때문에 구독료 만원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이라는 암실에서 2시간을 보내는 데에 만원은 잘도 내면서 새삼스럽지만 말이다. 찾아보니 원작인 책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책을 먼저 읽어보고 그 이후에 넷플릭스로 볼지 말지 결정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참으로 오랜만에 집 앞 도서관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의 주인공 ‘안은영’의 직업은 보건교사이지만, 일종의 퇴마사도 겸하고 있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본인 눈에는 보이는, 젤리 형태의 존재들을 해치우며 주변 인물들과 학교의 미스터리를 헤쳐 나가는 줄거리다. 소재가 ‘퇴마’라고 해서 어둡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이야기를 꽤 유쾌하게 풀어가기에 신선했다. 그리고 특히 맘에 들었던 점은 안은영이 딱히 사명감 혹은 책임감으로 뭉쳐진 인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너무나 시시한 동기인 ‘그냥 해야 하니까’ 그런 이유로 담담하게 움직인다.
젤리는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 존재를 내가 해치우지 않으면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의무처럼 느껴질 수 있는 그 무게를 성가셔하면서도 안은영은 절대 외면하지 않는다. 나는 그 모습에서 우리를 보았다.
학생 때까지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지만, 사회에 나가 정신없이 살아가다 보면 느끼게 될 것이다. 같은 사람이라 느껴졌던 주변 사람들은 어느새 나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고, 그들 눈에 나 또한 그렇게 보이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공학을 공부하고 있고,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관련된 일을 하게 되면 사고와 시야는 그 길에 맞춰 변화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에 비슷할 거라 착각하면서도 실은 다른 사람이 되어 만나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 하여도, 각자의 영역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나의 대상은 공학적 문제를 풀어내는 것, 의학을 공부하는 친구에게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 컴퓨터를 전공하는 친구에게는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일, 의상을 전공하는 친구에게는 유행에 맞는 옷을 만드는 일. 각자가 바라보는 문제가 다르다.
내게는 보이는 문제가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그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분명히 존재하고,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해결해야만 하기에 달려들게 될 것이다. 그런 나의 모습이 어쩌면 친구들의 눈에는 안은영으로, 나 역시 그럴 친구들이 안은영처럼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사고와 시각의 차이가 단순히 일의 영역에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삶, 전체에 걸쳐 존재할 것이다. 사람은 정의, 명예, 부, 권력, 박애 등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 중에서 자신이 바라보는 가치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간다. 각자 그로서는 너무나 선명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달려들며 살았고, 달려들지 않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렇지 않기에 달려들지 않았고, 달려드는 사람을 한심하듯이 쳐다보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갈등이 계속되는 건 마치 안은영처럼 각자에게만 보이는 것이 있다는 전제를 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보이는 것을 해결해야 하는 운명을 짊어진 수많은 사람. 그들은 그 무게만큼이나 자신들이 힘들다는 것을 다른 이가 공감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던 건 아닐까? 서로를 모르면서 공감만을 원하고 있었기에 불협화음만 가득해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사람들에게 그 운명을 소설 속의 안은영처럼 담백하게 받아들이라 강요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본성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툼만 가득한 세상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그저 알고라도 있으면 된다. 이해까지는 아직 머나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다는 것은 그에 비해 자존심이 상하지도, 나를 희생하지도 않는다. 안다는 것,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 모두 각자에게 보이는 것을 향해 삶을 내던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이해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모습을 가장 잘 상징하는 인물이 소설 속 한문 교사 홍인표인 것 같다. 홍인표는 안은영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 안은영이 퇴마를 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홍인표의 손을 잡고 있으면 그 에너지가 충전된다. 그 때문에 안은영의 분투 옆에 홍인표가 끌려다니며 보조한다. 나는 홍인표가 안은영에게 준 가장 큰 것은 에너지보다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그건 안은영의 노력을 알고, 이해하며 교감한 것. 그 감정의 가치가 더 중요했으리라 생각한다.
‘중요하다’라는 뜻을 풀어쓰면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꼭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각자 방향을 가진 삶이지만, 대부분을 그 과정에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 삶을 이끄는 핵심처럼 보이는 돈, 인기, 힘 그 원초적인 동기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일 수 있다. 어차피 우리는 무언가를 위해 살아가야 할 운명이기에 그것들은 방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선명한 방향의 끝에 존재할 불확실한 결실만을 기대하는 존재들은 서로의 인지, 나아가 이해, 그리고 공감. 우리는 서로와 교감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살아가는 힘을, 살아간다는 자각을 얻게 된다.
내게 보이는 것이 남들과는 다르다. 그리고 각자의 시각 또한 그렇다. 그렇게 모두가 안은영이라는 사실. 그리고 때로는 여유가 된다면 누군가를 알아주고 힘이 되어주는 홍인표가 되는 자세. 우리는 그렇게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의 안은영일 내게 보이는 방향은 그러하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안은영, 때로는 홍인표로 사는 것. 그것이 나의 젤리다.
당시 [보건교사 안은영]을 도서관에 반납한 뒤 넷플릭스를 구독해야겠다 마음먹고 실행했다. 안은영을 만나기에, 그것으로 만원은 이제 아깝지 않게 되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