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 인상주의

인상주의에 비친 인생관

by 초과니

나는 젊음의 진정한 기능이란 당연시 여기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한 발짝이라도 발전하며,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게 인상주의 화가들은 영원히 청춘을 놓지 않았던 사람들이라 느껴졌다.


19세기 중반 모네와 르누아르를 비롯한 젊은 화가들은 신고전주의, 낭만주의로 이어지고 있던 보수적인 미술에 대한 의문 그리고 새로움에 대한 갈망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보다 강렬했기에 마네가 만들어 놓은 그 작은 틈을 포착하여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패기 혹은 객기로 인상주의는 시작됐다.


인상주의는 인간이 느끼는 감각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시절부터 사건 위주의 장면을 작업실에서만 담아냈던 한계에서 벗어나 야외로 나가 눈으로 보이는 빛의 색채, 그 감각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지켜왔고 또 익숙해져 있던 기존과 작별한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세상의 질타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내면에서 올라오는 회의와 망설임. 그것들을 모두 극복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이다. 젊은 화가들은 빛과 색채에 대한 집념을 불태우며 그 혁신을 만들어갔다.


작가 자신이 인상주의의 전형인 모네는 평생 동안 인상주의를 지켰다. 야외 사생을 말년까지도 멈추지 않았고, 백내장으로 인해 본인이 담아내고자 했던 시각적인 감각이 망가져 감에도 불구하고 붓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함께 인상주의를 시작했던 다른 작가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인상주의의 방향과는 다른 곳으로 노선을 틀어도 모네는 죽을 때까지 인상주의를 지켰고, 불태웠다. 말년 작에 가까워질수록 형태가 점점 불분명해지고, 거친 색이 느껴지는 그의 그림을 느끼며 나는 내 속에서 피어오르는 전율을 봤다. 그것은 노쇠해진 자신을 학대하는 노인의 집착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모든 한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담아내려는 청춘의 순수함이었다. 나는 모네가 그런 사람이었기에 세대를 걸쳐서 모든 사람들의 무의식에 뿌리내리고 있었던 관념에서의 해방을 시작하는 진정한 아방가르드의 선봉장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모네뿐만 아니라 예술적 동지였던 르누아르 또한 말년에 관절염으로 인해 손으로 붓을 들 수 없는 상태에서도 입으로 붓을 물며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 기질이 존재한다고 느껴진다.


인상주의 이후 신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로 끊임없이 혁신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모네는 끝까지 자신의 화풍을 고수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결국 그 역시 자신을 제한한다고 여겼던 일종의 형식에 대한 압박감을 자신에게도 고착케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간혹 젊음은 진보라는 오아시스에 빠져 세상이라는 사막에서 신기루처럼 보이는 허상에 탐닉되는 경우가 있다. 자아란 것도 없이 그저 무엇의 재가 되는지도 모르고 불길에 휩싸여 타오르기만 하는 경우가 어쩌면 참 많다. 그렇기에 정직한 주관을 가지고 신념으로 선택한 길로 우직하게 나아가는 것이 그중에서도 건강한 젊음이라고 생각한다.


모네는 색채와 빛을 탐구하는 고된 과정으로 건초 더미, 루앙 대성당, 포플러 나무들 그리고 수련과 일본식 다리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대상으로 계속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스스로의 화풍에 대한 정체가 아닌 자기 발전에 대한 정진이었다. 그런 과정은 지지부진해보이고 화려하지 않기에 쉽게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하지만 모네는 변화무쌍한 대상으로 그림을 화려하게 꾸며내기 보다는 진정한 자신을 담아내기 위해 주관을 가지고 굳건하게 나아갔다. 어쩌면 그는 그 자체로 화려했기에 애써 화풍을 드라마틱하게 바꾸는 변신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그 길 위에서 축적되고 있던 탐구의 성취로 자신과 세상을 더 깊이 있게 알아가는 건강한 젊음, 청춘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었다.


스스로를 불태우며 진정한 청춘의 삶을 살아갔다고 느껴지는 화가들, 그렇게 시작된 인상주의는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오늘도 수많은 작가들의 땀과 눈물이 담겨진 수많은 작품들이 단순한 이미지로만 젊지 않은 시각으로 소모되고 있다. 그 작품들을 바라봤던 나의 시각이 과연 나의 젊은 나이만큼이나 젊은 시각이었던지 반성하게 된다. 설사 나 혼자더라도, 아무도 내게 동조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길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정진하는 것. 그것이 젊음이기에 나는 젊음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영원히 젊은 예술, 인상주의를 감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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