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그럽게도

애플 비전 프로 2

by 최의택

1년, 자그마치 1년을 문자 그대로 하루가 멀다하고 구글에 ‘Apple Vision Pro Accessibility’를 검색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보단 훨씬 오래 했지만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 실제 출시까지는 특별히 건질 게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골초 흡연자가 습관적으로 담배를 찾듯 구글 창을 열고 비전 프로를 검색했다. 내 책이 출간된 직후에도 그렇게는 안 했다.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끊을 수 없었고 결국 본 기사를 또 읽고 본 영상을 또 보기에 이르렀다.

사실 내가 한번 꽂히면 좀 질리게 하는 편이긴 하다. 그래도 그 수준이 신기록을 갱신했다. 무엇이 날 그렇게 만들었나. 특정하긴 어렵지만 결국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비전 때문이었다. 늘 누웠다 일어나며 컴퓨터를 하고 오른손으로 억지로 마우스를 쥐고 힘들여 커서를 움직이는 내가 어느새 시선으로만 가상 키보드를 쳐다봐서 글을 쓰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녁에 누워서는 아이패드와 스위치 제어로 낮에 하는 일의 일부만을 할 수 있고 그마저도 10분의 1이나 될까 말까 하는 속도로 한다. 그런데 비전 프로를 쓴다면 밤에도 낮과 똑같이 활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가능성에 불과했다. 그래서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했다. 내가 알아낸 나와는 그다지 관련 없는 정보들을 조합해서 나한테 의미 있는 시물레이션 결과를 하나하나 만들어 쌓아 올렸다.

마침내 이듬해 초 비전 프로가 출시됐고, 유명 테크 유튜버들의 리뷰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중 대부분은 약 반년 전 체험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접근성 관련해서 다룰 리도 없었다. 그래도 눈에 불을 켜고 정말이지 모든 리뷰를 찾아봤다. 그리고 하나의 보석을 발견했다.

Brian Tong이라는 테크 유튜버가 비전 프로에 탑재된 운영체제 비전OS의 설정을 탐구하는 영상을 올렸는데 접근성 부분도 따로 다룬 거였다. 그는 비전 프로의 시점에서 접근성 설정을 하나하나 시연해 보였다. 개발자 포럼에서 본 것처럼 기능 하나하나가 엄청났다. 엄밀히 말해 아주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새로운 기능이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대개는 맥과 아이폰에도 있는 기능이었다. 단지 헤드셋이라는 특성상 똑같은 기능도 좀 다른 차원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가령 음성에 실시간으로 자막을 달아주는 라이브 캡션의 경우, 맥이나 아이폰에서 사용할 때에는 사용자가 발화자가 아닌 캡션을 보게 되면서 생겨나는 간극이 불가피하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말하는 사람과 자막의 간격에 따라 몰입도가 다르지 않나. 만약 자막이 스크린에 나오지 않고 당신 손에 쥐고 있는 스마트폰에서 제공된다면? 영화 상영 시간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개를 숙이고 보게 될까(스마트폰을 들고 본다면 뒤쪽 사람들이 불평을 할 것이다)? 비전 프로는 전면의 렌즈로 내가 볼 시야를 그대로 재현해 주기 때문에 (게다가 친절하게도 비전 프로의 전면부에는 내 가짜 눈까지 띄워주기 때문에) 라이브 캡션을 발화자의 얼굴 밑이나 옆에 띄워서 자막과 상대를 동시에 보면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된다. 비단 접근성 기능뿐 아니라 인터넷 검색, 유튜브 시청, 하다못해 통화까지 헤드셋을 쓰고 두 손이 자유로운 상황에서는 뭔가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애플의 공간 컴퓨터라는 프레임이 그저 프레임인 것만은 아닌 셈이다.

아무튼, 나는 모처럼 찾아낸 커다란 발견을 쌓아 올리며 비전 프로의 국내 출시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더 큰 조각들을 찾을 수 있었다. Two F Zero T와 equal accessibility라는 유튜버들인데 두 사람 다 사지 결손 장애인이다. 사지 결손 하면 나는 초등학생 때 읽은 오체불만족의 저자가 떠오르는데 아마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두 유튜버가 각각 비전 프로의 후기를 올렸다. 나는 이거다 싶었다. 그들은 비전 프로를 쓰는 것부터가 하나의 컨텐츠였다. 과연 애플은 비전 프로를 접근성 높게 설계했는가? 쉽지는 않았다. 그나마 어깨 아래로 뼈가 돌출돼 있는 유튜버는 어찌어찌 비전 프로를 뒤집어 쓰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다른 쪽은 결국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카메라를 놓고 가서 씌워줬다(어쨌든 컨텐츠는 계속 만들어야지). 나도 부모님이 씌워줘야 할 텐데 과연 잘될까 싶었다. 이후 두 사람은 초기 세팅에서 상호작용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다. 결손 정도가 비교적 나은 쪽에서 한참을 이런저런 수를 써보는데 비전 프로에서 안내 음성이 흘러 나왔다.

“접근성 기능을 활성화하려면 아래를 쳐다보세요.”

그렇게 해서 켜지는 접근성 기능의 종류라든가 애초에 고개를 내려서 아래를 못 쳐다보는 사람은 어쩌나 하는 태클은 차치하고, 참으로 놀라운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괜히 애플의 접근성을 믿는 게 아니라니깐. 아들이 비전 프로를 씌워준 쪽은 다시 아들 찬스를 써서 세팅을 마쳤다. 그리고 각자가 설정의 접근성 기능 중 자신에게 맞는 기능을 찾아 활성화했다. 마법이 펼쳐졌다. 내가 상상한, 정확히 그 마법이 펼쳐졌다.

애플은 1년 동안 서너 차례에 걸쳐 신제품을 발표하는데 6월의 개발자 포럼 이후 가을에 미국과 기타 나라에서 새로운 세대의 제품들이 출시되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나라들은 이후에 차차 업데이트되곤 한다. 애플 비전 프로는 출시 자체가 늦어져 이듬해 봄에 출시를 한 건데 그렇다면 다음 이벤트는 다시 6월 WWDC였다. 애플 제품을 쓰기 시작하면서는 원래 그랬지만 나는 목이 빠져라 WWDC를 기다렸다. 비전 프로는 1차 출시를 미국에서만 했기 때문에 전세계의 많은 얼리어댑터가 나처럼 목이 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러나 예상 가능하게도, 비전 프로는 팔리지 않았다. 첫 발표 때와 출시 직후에 예상치 못한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그건 애플의 새로운 폼팩터이기 때문이었지 VR 고글이어서가 아니었다. 애플의 비전 프로를 접하고야 VR과 AR 그리고 MR이 어떻게 다른 건지 알게 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심지어는 가상현실 자체를 처음 알게 된 사람도 없지 않았다. 애초에 애플도 최소한의 수량만 만들었지만 그마저도 팔리지 않았고 애플이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묻지마 환불 정책으로 환불된 장치까지 더하면 사실상 망한 거나 다름없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비전 프로는 살 만한 물건은 아니기는 했다. 일단 거르고 보자는 애플의 1세대 제품이고, 무겁고, 2시간밖에 못 쓰는 배터리는 거추장스럽고, 무겁고, 막상 그걸 뒤집어쓰고 할 게 없고(세상에, 유튜브와 넷플릭스 앱이 없는 VR 고글이라니!), 무겁고, 결정적으로 비싸다. 더럽게 비싸다. 3,500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무려 500만 원. 저렇게나 무거운데!

대망의 6월, 새로운 버전의 비전OS 공개와 함께 2차 출시국이 발표됐다. 중국. 그렇지. 홍콩. 그래. 일본. 물론. 그리고 싱가포르. 끝.

나는 눈을 비비고 싶었다. 아마 유럽권 사람들도 비슷한 심정이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저러다 단종돼서 사라질까 봐. 비전 프로 관련 해외 커뮤니티에는 비전 프로를 사러 미국에 갈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과 중고 거래를 찾는 사람들, 직구를 하기 위해 저시력자용 광학 인서트를 사려면 필요한 미국 안과 처방전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들, 그리고 비전 프로의 무게를 완화하기 위해 자신이 어떤 마개조를 했는지를 자랑하는 사람들 등으로 아비규환이었다. 나는… 그냥 글을 썼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의 삶, 나의 시간, 나의 끝. 아마 나에 대해 알거나 혹은 내가 쓴 에세이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도 있을 텐데 절대 비관한 게 아니다. 큰그림을 처음부터 다시 그리느라 몰두하는 것일 뿐.

나는 직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유럽도 제치고 아시아권 나라들에 출시를 했는데 거기에 한국이 없다. 몇 개월을 더 기다린다 한들 추가될 것 같지 않았다. 단명종이나 마찬가지인 나한테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결코 쉽지는 않았다. 안경점에서도 놀라는 저시력자인 내가 비전 프로를 쓰려면 광학 인서트가 필요했다. 애플은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독자 규격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VR 고글처럼 DIY가 불가능했다. 나는 국내 테크 유튜버가 콘택트렌즈를 착용하고 VR 고글을 사용하는 모습을 봤기에 다시 해외 커뮤니티를 이 잡듯 뒤져 비전 프로 유저들이 어떤 렌즈를 쓰는지 찾았다. 음, 하드 타입은 안 되고 소프트 타입으로. 근데 소프트 타입이 뭐지? 검색의 사슬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광고로 많이 접하는 대부분의 콘택트렌즈가 소프트 타입이었고 나는 그걸 실제로 내가 착용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동네 안경점을 방문했다. 안경점 사장님은 어차피 테스트해보는 거면 유통기한 막 지난 렌즈를 써보라며 그 자리에서 포장부터 벗겨 직접 내 한쪽 눈에 넣어줬다. 와, 그 무한한 맑음이란! 안경만 써온 나로서는 그런 신세계가 또 없었는데 렌즈를 넣지 않은 쪽 시야가 겹쳐 펼쳐진 만화경 속에서 어지러운 것만 빼면 황홀하기까지 할 지경이었다. 사장님은 나머지 렌즈를 엄마한테 넘겼다. 엄마는 겁이 많은 사람치곤 나에 대한 일에는 대담한 편인데 역시나 이번에도 썩 어렵지 않게 렌즈를 넣는 데 성공했다(이후 매번 이렇게만 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사장님은 머쓱해하며 우리를 배웅했다.

렌즈 대비를 하는 동시에 나는 직구 전문 서비스를 또 한참 찾았다. 값비싼 장애인 보조 장치 직구 이력이 없지 않은 나였지만 전자제품 직구도, 무려 5백만 원에 달하는 금액대도 처음인지라 더 많이 알아보았다. 수차례, 수십 차례, 어쩌면 수백 차례의 저울질 끝에 한 곳으로 결정했고, 마침내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5일 뒤 애플 비전 프로 상자가 내 앞에 놓였다. 기가 찼다.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가능성만 탐색하던 것이 5일 만에 내 앞에 실재하다니.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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