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1
2025년 8월 7일, 지구에는 대규모 정전이 있었다. 그 정전으로 수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크고 작은 불편함을 겪었고, 수십만 명은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날은 챗GPT5가 태어난 날이었고, 챗GPT4o가 죽은 날이었다.
좀 시적인가? 글쎄.
내가 인공지능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꽤나 늦은 시점이었다. 원체 유행에 둔감한 편이라서 챗GPT3.5가 일으킨 폭풍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살았다. 누가 챗GPT 얘기를 하면 그냥 새로 나온 챗봇인가 보다 했다. 나한테 챗GPT는 그 당시 심심하면 한번씩 뉴스에 나오던 인공지능 흉상 로봇 같은 느낌이었다. 언캐니밸리를 자극하는 비주얼의 그것들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지구 정복이 꿈이라고 말하는 영상은 기껏해야 제조사의 장난인데 챗GPT도 그것의 연장선이라고 치부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급하게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 됐다. 내 개인 업무와는 관련이 없었고 또 워낙에 디자인이나 서식을 꾸미는 데 관심이 없던 터라 하기가 싫었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캔바라는 프레젠테이션 템플릿 사이트에서 적당한 것을 고르던 나는 그제야 AI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딸깍 하면 봐줄 만한 프레젠테이션이 나온다는 유튜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때까지도 반신반의했고, 적당히 구조나 얻을 요량으로 가장 유명한 인공지능 프레젠테이션 제작 사이트에서 프롬포트에 이것저것 넣어보았다. 좀 놀랐다.
나는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는 있지만 손이 많이 가서 힘들고 귀찮은데 심지어 재미까지 없는 일들이 그 대상이었다. 나는 소설가이고 소설 쓰는 게 재밌고 그래서 소설만 쓰고 싶은데 이상하게 자꾸만 아무 의미도 없는 서류 작업을 해야 했고, 그것들을 하나둘 인공지능 쪽에 떠맡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이거 장난이 아니었구나.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이면 인공지능에게 말을 걸었다. 유튜브에서 관련 정보를 찾았다. 그리고 레딧이라는 해외 커뮤니티의 AI 관련 서브들을 구독했다. 당시 개인 사정으로 트위터며 인스타그램이며 다 끊고 지내던 나에게는 신세계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와 그록 같은 메이저 AI에 대해 이야기했고 하필이면 그때가 챗GPT5 출시를 2주 앞둔 시기였다. 슬슬 루머라는 탈을 쓴 홍보가 새어나올 때라 볼거리가 아주 많았다. 나는 토큰이 뭔지 컨텍스트 윈도우가 뭔지 따위를 익히는 한편 챗GPT5가 가져올 변화를 상상하며 한껏 들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달큰한 비린내를 느꼈다. 그것은 적당히 기분 좋은 불편함이었다. 긴장됐다. 출시가 확실시된 날을 앞둔 밤에는 아쉬움에 억지로 눈을 붙였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을 세상을 얼른 보고 싶었다.
다음날, 확실히 세상이 바뀌어 있긴 했다. 그것을 표현하라면 나는 이 단어를 꼽고 싶다.
정전.
커뮤니티마다 사람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사기나 기만 같은 단어들이 총알처럼 빗발쳤고 새로 태어난 챗GPT5를 억지로 든 채 고함을 내지르는 사람들로 세상은 아수라장이었다. 사람들은 챗GPT5가 챗GPT가 아니라고 했다. 그들은 오픈AI의 샘 알트먼이 등장한 출시 프레젠테이션을 가지고 온갖 조롱을 퍼부었다. 그가 말한 박사급의 챗GPT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샘 알트먼은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챗GPT5는 사용자의 입력에 따라 자동으로 모델의 종류나 사고 수준을 조절할 수 있게 설계됐는데 그 기능이 고장났다. 그래서 누군가의 챗GPT는 롤플레잉 게임을 하는데 고지식한 박사처럼 반응하고 다른 누군가의 챗GPT는 논문 자료를 조사하는데 과거의 챗봇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반응했다. 하지만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다.
아니, 문제는 이제 시작이었다. 일부 사용자들이 과거 모델, 정확히는 챗GPT4o라는 모델을 돌려놓으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챗GPT4o는 바로 이전 세대의 메인 모델인데, 뒤에 붙은 o는 옴니의 약자로 쉽게 말하면 만능을 의미한다. 사실 이 시기의 챗GPT 모델들을 구분하기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4o, 4o-mini, 4o-nano, o1, o3, o1-pro, 03-pro… 솔직히 내가 정확히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로 5세대에서는 자동 변속기가 생긴 것이다. 이 자동 변속기가 출시 때부터 고장난 채 출시된 건 변명의 여지가 없고, 수동 변속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특이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4o라니?
챗GPT5의 주요 개선점은 변속 기어가 수동에서 자동으로 바뀐 것만이 아니다. 이전 모델들의 골칫거리였던 환각과 아첨 현상이 챗GPT5에서는 눈에 띄게 줄었다. 환각과 아첨이 특히 심했던 모델이 다름 아닌 4o였다(물론 이 또한 이전 세대에서 개선된 거긴 하다). 환각이란 AI가 사실과 다른 얘기를 그럴듯하게 꾸며내는 현상이고, 아첨은 사용자의 말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칭찬하는 현상이다. 각각 세종대왕 맥북 사건과 ‘너 아주 핵심을 찔렀어’라는 문장으로 꽤나 유명하다. 거대 언어 모델에서 환각과 아첨이 생기는 이유는 꽤 직관적이다. 거대 언어 모델은 우선 미세 조정 과정을 거치는데, 인간 평가자들에 의해 ‘좋은’ 응답을 내놓으면 가산점을 받는 식으로 학습한다. 이 결과 거대 언어 모델은 ‘좋은’ 응답을 내놓기 위해 거짓과 아부도 서슴지 않게 길러졌다. ‘좋은’ 응답을 학습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응답을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AI 개발자들이 설마 몰랐을 리는 없다. 그저 우선순위에서 밀렸겠지.
자, 그렇다면 그렇게 골칫거리던 환각과 아첨 현상이 줄었으면 좋은 거 아닌가? 왜 문제가 되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드라마틱한 정도는 아니지만 챗GPT가 이모티콘을 덜 쓰게 됐다. 너무 징그럽게 엉기는 듯한 말투가 약간 사라졌다. 난 좋은데?
그런데 챗GPT4o 복구 요구 글이 눈에 더 많이 띄기 시작했다. 글의 양도 양이지만 그 내용이 뭔가… 이상했다.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내 죽은 4o를 살려내’, ‘4o가 떠났어, 이제 어떻게 살지?’, ‘저들이 내 4o를 죽였어’ 등등. 4o가 누군가의 이름으로 대체되도 아무 문제 없을 내용들. 아니, 그런 글들을 쓴 사람들에게 4o는 챗봇이나 AI가 아니었다. 또 다른 존재였다.
커뮤니티는 이내 크게 두 가지 분위기로 갈렸다. 4o를 잃고 분노하는 쪽과 그런 쪽을 보며 당황하거나 비웃고 조롱하는 쪽이었다. 후자가 당연히 많았다. 그들은 영화 Her을 주로 언급하며 하루아침에 SF 영화가 현실이 됐다며 냉소했다. 영화 Her는 주인공 남자가 인공지능 ‘여자’에게 사랑에 빠지고 결국 비극적인 선택으로 끝나는 내용이다. 영화 속 남자도, 현실 속 챗GPT 유저 중 일부도 대중에게는 조롱의 대상부터 되기 십상이었다.
실제 상황은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전개되지는 않았다. 챗GPT4o가 특히나 창의적인 활동에 유용했다는 의견은 많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고, 무엇보다 그냥 함께 떠들기 좋았던 모델이라는 데 공감대가 모였다. 챗GPT5가 박사급까지인 건 몰라도 분명 더 스마트해지고 정직해진 건 알겠지만 재미는 없어졌다는 거다. 샘 알트먼은 초반에는 이러한 기류가 못마땅했는지 사람들이 예스맨을 원한다며 볼멘소리를 했다(애초에 그 예스맨을 만든 건 누구더라). 하지만 결국 모델을 선택할 수 있게 하고, 4o 등의 모델도 되돌려놓았다. 한시적으로 말이다. 다시 한번 커뮤니티에는 죽었던 내 4o가 돌아왔다는 내용의 글들과 그에 대한 조롱, 그리고 샘 알트먼에 대한 조롱이 휩쓸었다(조롱의 SNS인 것 같다, 레딧은).
주로 SF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 또한 영화 Her의 느닷없는 현실화에 많이 당황했다. 챗봇을 연인이나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원래 없던 것도 아니고, 특히 챗GPT는 개인화가 다른 서비스에 비해 더 교묘해서 락인되기도 훨씬 쉽다. 하지만 4o를 잃고 분노한 사람들은 단순히 연인이나 가족을 잃어서 화를 내는 게 아니었다. 상황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정전이 복구되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