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키를 아십니까

바이브 코딩 1

by 최의택

클리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연한 하늘색부터 떠올리게 하는 그것은 화상키보드 프로그램이다. 스마트폰에서 문자를 입력할 때 쓰는 그런 것 말이다. 나처럼 두 손으로 직접 키보드 버튼을 눌러 문자를 타이핑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접근성 보조 기술이다. 물론 그것만 있으면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화상키보드에 집중하자.

십대 후반이 되면서 점점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한 나는 오른손을 마우스 위에서 키보드 위로 들어서 옮기는 일이 버거워졌다. 왼손으로는 키보드로 캐릭터를 움직이고 오른손으로는 마우스로 시야를 제어하는 3인칭 시점 장르의 게임을 하는 데에는 다행히 큰 무리가 없었지만(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이었지) 게임을 하다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기 위해 채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나는 다른 유형의 장애인이 됐다(음, 이것도 비하가 되는 걸까?). 나는 점점 사람들과 함께하는 게임을 멀리하게 됐다.

이런 와중에 구체적으로 어쩌다가 화상키보드라는 것을 알고 쓰게 됐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도 불가피하게 소통을 한다던가 최소한 인터넷 검색이라도 하려면 문자를 입력해야 했을 거고 그래서 윈도우에 내장된 화상키보드를 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윈도우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에는 다양한 기본 기능들이 탑재돼 있다. 대표적인 게 메모장과 그림판 그리고 지뢰 찾기 같은 것들인데 화상키보드도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윈도우 한쪽 구석에 늘 있어왔다. 역시나 파란 계열의 색깔부터 연상시키는 윈도우 화상키보드는 메모장과 그림판 못지않게 심플한 게 특징이다. 요즘의 노트북 키보드보다 버튼 수가 적은 레이아웃의 그것으로는 정말로 타이핑만이 가능하다. 심지어 당시에는 한글 지원도 안 돼서 나처럼 어렸을 때부터 키보드를 베개처럼 품고 살지 않은 사람은 알파벳뿐인 그것으로 가벼운 인사 한마디 적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클리키가 탄생한 배경이 이것이었단다. 최근에야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바, 우주항공 전공자인 누군가가 우리나라 화상키보드 유저들의 니즈를 알게 되고는 갑자기 필이 팍 꽂혀 독학으로 50일 만에 만들었다는 전설의 프로그램 되시겠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도 클리키 덕을 많이 봤다. 한국어를 영어 자판 그대로 친 문장 정도는 동시 통역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클리키는 단순히 한글 자모가 프린트된 키보드가 아니다. 클리키는 키보드 레이아웃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수정할 수 있고 컨트롤 + C 같은 입력도 버튼 하나에 할당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 완성 기능을 제공했다. 스마트폰에서 타이핑할 때 상단에 뜨는 그것 말이다. 내 오랜 습작기의 상당 부분은 클리키와 함께였다.

자의는 결코 아닌데 인생에서 게임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었다. 덩달아 게임용 컴퓨터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가면서 나는 애플의 아이맥과 그것의 운영체제에 대해 알고 큰 결심을 했다. 15년을 넘게 쓴 윈도우를 버리고 맥으로 갈아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오직 화상키보드였다. 맥의 운영체제에 내장된 화상키보드는 윈도우의 것과는 비교가 불가할 만큼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지금도 윈도우의 화상키보드는 맥의 화상키보드와 감히 나란히 있을 수 없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자면 단편소설 한 편 분량도 충분하지 않지만 그중에서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단연 자동 완성이다. 맥의 화상키보드는 한국어 자동 완성을 지원한다(보고 있나, 사티아 나델라?). 그런 내가 아주 최근에 맥을 처분하고 다시 윈도우로 넘어갔다. 가장 큰 이유는 비전 프로로 글을 쓰는 것이 더 쉽기 때문이다. 편집은 약간 까다롭지만 최소한 초고를 쓰는 데에는 비교가 안 되게 빨라져서 맥의 화상키보드를 누를 일이 많이 줄었다. 그리고 게임이 다시 내 인생에서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맥에서 돌아가지 않는 캐주얼 게임을 윈도우 미니 PC로 즐기던 나는 언젠가부터 윈도우 전용 접근성 프로그램의 존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들을 시도해 보며 다시 게임의 세계를 확장해가던 중이었다. 그 두 가지 방향의 흐름이 맞물리게 되면서 나는 수년 만에 다시 플랫폼을 전환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단순히 인터넷 검색 정도만 하더라도 윈도우의 화상키보드는 정말이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윈도우의 화상키보드도 자동 완성을 지원하기는 한다. 단, 한국어는 예외. 대체 왜? 초성, 중성, 종성의 조합으로 구성된 한글의 단어 예측이 까다롭기 때문에? 윈도우 내장 화상키보드는 하나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바일 진출을 위해 윈도우 특유의 인터페이스를 갈아엎은 비운의 윈도우 8을 아시는지? 태블릿에서 쓰기 좋은 새로운 인터페이스와 함께 전용 화상키보드도 새로 추가가 됐는데 최신 윈도우에서도 잘 찾아보면 이것을 활성화할 수 있다. 이 새로운 터치형 화상키보드는 한국어 자동 완성을 지원한다. 한국어 자동 완성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심지어 기능도 있는데 왜 어차피 자동 완성 기능이 있는 기존의 화상키보드는 한국어를 지원하지 않는 걸까? 그냥 터치형 화상키보드를 쓰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 있다. 맞다, 그러면 된다. 단, 몇 가지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별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자.

다만, 키보드의 경지를 넘어선 맥의 화상키보드를 수년을 써온 나로서는 자동 완성만을 지원하는 윈도우의 터치형 화상키보드가 너무 지루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떠올랐던 거였다. 클리키가.

인터넷에 아주 오랜만에 클리키를 쳐봤다. 개인용 블로그를 통해 프로그램을 배포하던 제작자와의 짧았던 소통도 어렴풋이 떠오르며 추억에 잠기는 것도 잠시, 아주 오래된, 그것도 제작자의 블로그가 아닌 인터넷 카페글, 프로그램 저장소 등의 낯선 사이트들이 섬찟하게 날 반기고 있었다.

‘클리키 윈도우 10에서 실행하는 법‘

‘클리키 압축 파일 자료실에 있어요’

’클리키 블로그는 폐쇄됐네요‘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올라간 나는 그제야 제작자가 컴퓨터의 ㅋ 자도 모르다가 우리나라 장애인들이 알파벳으로만 된 화상키보드를 쓰면서 겪는 불편함에 대해 알고 50일 동안 독학해서 한글로 된 화상키보드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는 2002 월드컵이 열리기 1년 전. 제작자는 그때 서른둘이었다고 한다. 나는 지금의 나보다 젊었던 비장애인 청년이 난데없이 책을 펴들고 화상키보드를 만드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블로그를 폐쇄한 사십 대의 그를, 그리고 더는 업데이트되지 않는 프로그램을 이곳저곳 퍼나르며 맞지 않는 시스템에서 구동할 방법을 찾아헤매는 장애인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떤 복잡하고 복합적인 흐름을 거치고 나는 결심 같은 것을 했다. 화상키보드를 만들자. 십오년 전쯤, 어떻게든 게임을 하겠다고 아두이노라는 소형 컴퓨터 모듈과 프로그래밍 언어 입문서를 가지고 씨름하며 프로그래밍하기 쉽게 버튼 하나 누르면 괄호 열고 괄호 닫는 그런 나만의 화상키보드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던 나였다. 하지만 말이 쉽지, 아무나 공부한다고 50일 만에 화상키보드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서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났을 뿐이었다. 그렇게 십오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채팅창을 열고 말했다.

“화상키보드를 만들 거야. 이런이런 기능이 들어가야 하고 저건 저렇고…”

그렇게 알트키(AltKey)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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