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보다 100%가 쉬울 때가 있다

[양평 사람 최승선 001] 매일 양평을 생각하겠다는 각오

by 최승선
24년 9월, 대학 졸업과 함께 떠났던 양평에 다시 돌아왔다. 직장은 그만뒀고, 집은 넓어졌다. 대학원 전공을 '로컬 디자인'으로 정한 덕에 과감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만 28세의 귀촌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되었다. "어때?" 묻는 말에 여러 생각을 압축해 "좋아"라고 답하지만, 압축 해제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그 마음으로 [양평 사람 최승선] 시리즈 연재를 시작한다.

양평에서 모든 학교를 다닌 나는 모든 학교에서 좋아하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들은 모두 가르치는 실력이 뛰어났고,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주는 교사였다. 10대 청소년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가르쳐야 할 것들을 명료하게 가르쳤다.


중학교 때 좋아한 선생님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3년간 꾸준히 내준 수행평가 쓰기 과제는 일기쓰기였다. B4 노트 기준 10줄 이상, 주 2회 이상. 꼭 일기가 아니더라도 됐다. 무슨 글이라도 쓰면 됐다. 제출일은 매주 월요일이었고, 나는 대체로 내지 않았다.


일기장을 제출하면 받을 수 있던 코멘트를 무척 좋아했으나, 언제나 일기는 잊히기 마련이었다. 일주일이 얼마나 빠르던지. 불행인지, 다행인지 쓰기 수행평가 점수 만점은 10점이었고, 최저점은 6점이었다. 6회 미만 제출이면 어차피 최저점이었고, 그래서 꾸준히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님은 만만하지 않았다. 공정에 예민한 10대들을 다룰 줄 아셨다. 6회 미만 제출한 사람들은 수행평가 제출 기간이 끝나고 추가 과제를 부여받았다. 그건 '매일 일기'였다. 매일 일기장을 제출해야 했다. 분량도 늘었다. 10줄이면 됐던 일기를 한 바닥을 써야 했다. 길게 쓰기에 부담 없던 나도 마지막 2-3줄을 못 채워서 꾀를 쓰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패널티'였던 일기 쓰기는 나에게 '보너스 스테이지'같았다. 일기를 쓰는 것도, 보여주는 것도 좋아하던 나는 다만 일기 쓰기가 우선순위에서 매일 밀렸을 뿐이었다. 매일 일기를 쓴다는 건, 매일 코멘트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매일 일기를 제출해야 한다는 건, 매일 일기를 써야 할 이유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일기 쓰는 사람이 되기 좋은 환경이었다.


그때 알았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경계에 있는 일들은 빼먹을 기회를 주면 안 된다. 해야 될 날과 안 해도 되는 날을 고르는 순간 후자가 압도적으로 이겨버리고 만다. 새해를 맞이하며 100편의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결심은 분명 그 선생님 덕이다. 중학생 때도 매일 일기를 썼는데 그 때보다 2배를 더 산 내가 못 쓰겠냐는 마음.


양평과 관련된 에피소드도 100개쯤 우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그럼 매일 검사와 코멘트를 해줄 독자만 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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