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동네는 여전한가요

by 하얀새

굳이 돌아가던 길이 있었다. 급하면 마지못해서라도 지나갈 법도 한데 차라리 지각을 하면 했지 죽어도 그 길로는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참 별나고 지랄 맞은 성격이다. 하지만 싫은 걸 어쩌겠나..


가난했던 동네였다. 한집 건너 한집마다 식구들이 모이는 시간이면 오손도손 살가운 대화가 오가기보단 폭언과 폭력, 그러다 이내 밥상이 엎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놀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담장을 넘어와서 내 귀에 들어와 박히는 일이 허다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던 나는 겪지 않아도 될 그 공포의 시간을 옆집 아이들과 함께 감당해내야 했다.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던 어린아이였기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 시절엔 다들 사는 게 참 측은했다.


하지만, 난리통에서도 사랑은 피어나듯 전쟁 같은 하루 중에도 내 안에 있는 동심을 몽글몽글하게 일깨워주는 것들이 있었다. 학교는 그중 하나였다.

교문을 들어설 때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면 간밤의 일은 까마득히 잊는다. 노랫말이 예쁜 동요의 리듬 위에서 사뿐사뿐 노닐다 보면 학교는 어느새 내가 꿈꾸는 세상이 되고 그곳엔 늘 무지개가 떠 있었다. 밝고 맑다. 빨갛고 노랗고 푸르고 싱그럽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우리 엄마는 학교에서 굵직굵직한 자리를 많이 맡고 계셨다. 덕분에 나도 선생님과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알아주는 인사였는데 운동회나 학교의 큰 행사를 할 때면 단상 위에 엄마와 내가 나란히 있을 때가 많았다. 엄마는 내빈석에, 나는 방송반 아나운서로… 나는 엄마가 멋있었고 엄마는 나를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그럼에도 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으면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매일같이 엄마를 졸랐고 결국 그 동네에서 탈출을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마흔이 훌쩍 넘어선 어느 날,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어졌다. 내 안에 있던 용기가 그제야 어둡고 쓸쓸했던 가난한 기억 속을 뚫고 나온 것이다.

세상이 수십 번 수천번이 변해도 절대 너만은 변치 않을 것이라 여겼던 동네는 여기가 거긴 가를 무한반복하게 할 만큼 달라져 있었다. 그야말로 딴 세상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와 볼걸… 유별스럽게 돌고 돌아 피해 다녔던 세월이 무색했다.


다행히 학교는 그 자리에 있었다.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사라지지 않고 그때 그곳에 있어주어 고마웠다. 교문 앞 피노키오 문방구도 그리고 내가 다녔던 해바라기 피아노 교습소도…


손바닥만 한 운동장에 (좌로 돌아가! 우로 돌아가!)를 못해서 담임 선생님에게 혼나던 우리 반 반장이 보인다. 달리기가 하기 싫어서 엉덩이를 한자나 빼고 있는 친구도 보이고 수줍게 연애편지를 건네는 6학년 1반 영미의 모습도 보인다. (쪼끔 한 것이!! ㅎㅎ)

그리고 그곳엔 누구보다 젊은 날의 엄마가 있고 단단하게 자라고 있는 나도 있다.

그래서 눈물이 난다. 엊그제 일처럼 하나둘 되살아나는 추억은 아련할 만큼 그립고 또 그립다.


최근에도 딸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다녀왔었다. 엄마가 다녔던 학교라는 게 신기한 건지, 꼬꼬마 시절이 엄마에게도 있었다는 게 신기한 건지 아이들은 돌림 놀래처럼 와~ 와~ 를 연신 내뱉었다.


돌아 돌아 피해 가던 길을 굳이 찾아가 볼만큼 이제 내가 살던 동네와 학교는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허기진 기억이 데워지면 추억은 배가 부르고 냉랭했던 기억의 온도는 다시 뜨거워진다.


(그대들의 학교 운동장은 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