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서 신으로

심장이 터질 듯한 아픔과 감사가 교차한 곳

by 그레이스샘
Screenshot 2025-05-27 at 11.02.16.JPG


나는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을 가본 적이 없어 이 그림을 직접 보질 못했다,

지인들과 책을 읽던 중 작가의 엄마,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그녀가 이 그림을 보고 눈물을 지었다는 글을 보고서야 알게된 것이다.

이 그림은 젊은 청년, 이미 죽은 예수를 마리아가 온 몸으로 지탱하며 서 있는 것같은 느낌을 그린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 <무덤의 예수와 성모>이다.


성경에는 요셉이 자신의 무덤에 예수를 장사했다고할 뿐 그 무덤까지 따라가 죽은 아들을 저렇게 안았다는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그랬을거다. 나라도 그랬을테니.


2025030390015_0_20250303100511650.jpg

지난 3월 천주교에서는 교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돌아가시고 이어 새로운 레오교황이 선출되었다.


갑자기 왜 천주교 이야기를?

난 그 때쯤 천주교신자인 지인이 같이 사는 엄마를 전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듣고 놀라고 있었다.

이제 얼마 사실 지도 모를 엄마가 돌아가신 아버지가 불교신자였다는 이유에서 그냥 엄마 편한대로 하게 하신다는 것이었다.


개신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천주교의 정체가 무엇인가?

결국 내 마음에 더러 사람들이 천주교가 이단이라더니 진짜 이단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 생각은 결국 개신교교인의 모임에서 문제가 되었다.

나의 이 순수한 격정은 마음을 그대로 쏟아내게하였고 그 안에서 상처받는 이가 생겼다.

구원의 확신은 없지만 아들이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뤘다고 아들따라 자신도 천주교식으로 하겠다 마음먹은 할머니를 둔 이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천주교를 이단 운운하는 나의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Screenshot 2025-05-27 at 11.18.56.JPG

그러던 어느날, 50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교인의 장례예배를 드리러 장례식장엘 갔다.

예배를 드리는 중간 중간 80이 넘은 친정엄마의 슬픈 곡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아~ 그 때 나는 나의 어설픈 천주교에 대한 판단에 균열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아파 병치레를 하던 50대의 딸이 죽어도 저렇게 슬퍼 애통해하는데 30대의 젊은 아들이 십자가에 박혀 온 몸에 피를 흘리며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마리아는 어땠을지.

그 어떤 아픔이, 그 어떤 고통이 그 날 마리아의 것에 비할 수 있었을까!

'예수'의 생애 영화에는 눈물짓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격정적이었을거다. 그래서 많은 피에타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마리아의 엄마로써의 고통에 대한 묵상이 이어졌다. 동시에 천주교에 대한 나의 날선 비판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겐 더 깊은 각성이 일어났다.

엄마에서 한 인간이 된, 한 아들에서 신이 된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마리아가 그저 한 엄마로써 고통 중에 죽어간 자식에 대한 슬픔과 회한에만 사로잡혀있었다면 평생 눈물과 후회로 살아갔을 거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마리아에게 아들을 넘어서 신이 되었다.

고통과 슬픔으로 점철된 그녀의 인생에 오점이 된 아들이 아닌 그녀를 그 죄에서 구원해주시는 신이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가장 먼저 구원받은, 참 진리를 깨닫게 된 여인이 마리아였을 지도 모르겠다.


내 살과 피를 다 쏟아내고도 살리고 싶었던 마리아의 아들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을 죽음의 자리로 끌고 갔던 하나님의 아들, 온전한 구원자가 되는

그 순간을.

마리아는 분명히 경험했을거다.


딸의 죽음 앞에 고통스러워하던 엄마가 천국환송예배에서 마지막 웃음을 띨 수 있는 그 또한 그 이유일거다. 예수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구원의 약속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이젠 천주교의 구원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소리를 접고

그 안에, 역사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대하리라 마음먹는다.

아들을 십자가 재물로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모르시겠는가! 아니라면 그냥 두시겠는가 말이다.


이젠 섣부른 비판을 접고 내 안의 믿음이 올바로 서있는 지 먼저 돌아보리라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