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과 탈락사이의 갈등을 겪으며
퇴직 이후 가장 절실하게 겪고 있는 문제가 재정문제다.
그럴싸한 직장을 다니며 자영업을 할 땐 사업이 잘 안돼도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있어 다소 삐걱대도 견딜만했다.
하지만 퇴직 이후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사라지자 가정과 사업의 재정이 함께 흔들렸다. 대기업 직장인에겐 그렇게 후하던 은행도 자영업자에게는 냉정했다.
냉혹한 현실을 경험하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버둥거리며 지내온 지 10년, 매년 올해는 작년과 좀 다르겠지기대하며 애써봤자만 10년의 성적표는 하향곡선이다. 어찌 이럴까 싶을 정도로 도무지 반등할 기미는 보이질 않고 계속 내려만가고 있다.
그 사이에 내가 이런 일까지 할거라고 생각못했던 다양한 돈벌이에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그렇게 벌어들인 돈은 푼 돈에 불과했다.
집과 가게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해결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나는 부채의 늪에 빠졌다.
매장을 살려보려고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결국 내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매출은 줄어들고 빚은 갚아야 하는 이중고에 빠졌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한창 공부할 때라 돈이 한없이 들어갔다.
늘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숨쉬기도 힘들게했지만 그래도 중간 중간 구세주처럼 돈이 들어와 넘어지질 않았다. 전세로 살던 집이 팔리질 않아 사두었더니 다행히 올라서 그 덕을 봤다. 그게 없었으면 엄청 허덕였을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젠 정말 더 이상 바닥은 곤란하다.
여기까지여야한다.
이제까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은 늘 여지가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볼 여지가.
까놓고 말하면 돈을 빌릴 곳이 있었다.
이젠 없다.
아니 이젠 돈을 빌리고 싶지 않다.
제대로 뭔가를 해서 일어나고 싶다.
여기가 바닥이길 간절히 바란다.
인생은 시소와 같다고 했다.
끝까지 내려가면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그래서 내려가는 것을 극구 싫어하면서도 올라갈 것을 기대하며 견디게 된다.
그러나 어디가 바닥인가?
이정도면 바닥이지 싶던 곳이, 그런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때마다 죽을 만큼 힘들었다.
그런데도 살아있고 또 새로운 바닥을 경험하고 있다.
그 추락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는 지점에 이르고야 말았다.
이제서야 다시 올라갈 수 있는 시소에 타고 있는 것이 아니면 어쩌나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쩌면 이미 그 레이스에서 제외된 존재인 것은 아닌지....
'탈락'
추락이 아름다운 것임을 탈락이라는 단어를 마주하고서야 깨달았다.
그 바닥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추락은 언젠가는 올라갈 그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니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제서야 이런 기도를 하고 만다.
나의 삶이 당신의 궤도에서 탈락되어질 정도로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나를 용서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지금 겪는 이 모든 고난의 순간순간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 순간이 내가 져야할, 감당해야 할, 견뎌야 할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해 견디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올라갈 그 어디만을 생각하며 지금 있는 이 자리를 한탄하지 않게 하옵소서.
바로 이 자리에서 기쁘게 내가 져야할 십자가를 지게 하시고
이 자리에서 감내해야 할 고난의 의미를 제대로 익히게 하옵소서.
살아온 시간들이 후회스럽고 아프지만 그것도 내가 품어야 할 삶이라 여긴다.
그 삶으로 인해 지금이 힘들지만 지금을 최선을 다해 살아냄으로
언제가는 올라갈 시소의 끝에서 이 시간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게되길 소망한다.
한 없는 추락으로 혹 내가 레이스에서 벗어난 탈락자가 아닌 지 두려워질 땐 그냥 두 손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 내 두려움과 갈망을 숨기지 않는다.
그 때마다 내 연약함을 감싸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이것이 지금 내가 살아야할 삶이며 신앙이다.
나는 더 내려갈 수도 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자리에서 난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쓸거다. 언젠가는 나의 추락속도보다 더 빠른 힘으로 나를 잡으실 그 손을 기대하며 말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셨던 다윗도 그 절망의 순간에 애타는 심정으로 기도하지않았는가!
나 또한 기도하고 찬양하리라.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