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수녀들

절제라는 이름의 무책임함

by 최목필


과연 속편이란 그림자만 탓할 수 있을까?



아주 먼 옛날, 어느 마을에 아름다운 여자가 살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멀리 소문나 로마 관리였던 올리브리우스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그는 그녀를 찾아가 자신과 결혼하자고 회유했다. 그러나 여성은 자신의 영혼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로 서약하였다며 거절하였고, 화가 난 올리브리우스는 그녀가 신앙을 버리도록 잔인하게 고문하며 괴롭혔다. 끔찍한 고통을 견디며 감옥에 갇힌 그녀의 앞에 어느 날 용의 형상을 한 악마가 나타나 시험하며 신앙을 버리라고 유혹했다. 그러자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십자가로 용을 마구 내리쳐 물리쳤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남자 더욱 격분한 올리브리우스는 심한 고문을 가하였고, 그녀는 결국 참수형에 처했다. 이것은 성녀 마르가리타의 이야기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하늘을 향해 기도하며, 자신을 믿는 이들이 축복받기를 빌었다고 전해진다. 잔다르크의 환시에 등장한 성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성수를 말통에 들고 다니면서 악마의 머리 위에 마구 부어 버리는 수녀. 담배를 버릇처럼 입에 물고 욕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성모 마리아상을 악마의 입에 쑤셔 넣는 수녀. 그러나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아이의 목숨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수녀, 유니아. 그리고 미카엘라. 거침없는 두 검은 수녀들을 통해 신성함의 형태 재해석을 시도한다.




수녀와 검은 수녀


영화 <검은 수녀들>은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2015)의 후속작으로 개봉 전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목부터 나름 파격적이다. 단순히 ‘사제들’을 ‘수녀들’로 뒤집은 게 아니다. ‘수녀’는 사제가 아니기 때문에 교황청에 지침에 따라 정식 구마 의식을 집전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주인공 유니아 수녀(송혜교)가 구마 의식을 행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교회의 관습과 규율에서 벗어났음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수녀는 어떤 존재인가. 사전적으로는 ‘청빈(가난)’, ‘정결(순결)’, ‘순명(복종)’의 서약을 맺고 수도회에 소속되어 기도나 교육 등 다양한 종교적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같은 종교적 봉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역사적, 제도적인 이유로 수녀는 사제로 인정받을 수 없다. 영화에서도 언급됐듯이,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도 현저히 낮은 듯하다.

오컬트 장르에서 수녀의 이미지는 주로 굳은 신앙심을 가진 '신성한 존재'에서 출발한다. 신성하고 순결하기에 악과 대립하거나, 초자연적 힘이 생기거나, 오히려 악에 물들어 악몽 같은 존재로 변하거나 아예 악마가 수녀의 형상으로 등장해 삼위일체 및 예수의 존재를 조롱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오컬트 영화 <컨저링 2>(2016)에 등장한 악마 발락(Valak)이 수녀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대중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를 남겼다.


반면 <검은 수녀들> 속 수녀들은 어딘가 남다르다. 유니아의 첫 등장은 악마와 대적하기에 앞서 겁에 질리거나 손에 묵주를 감고 간절히 기도하는 게 아닌,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다. 종교적 인물로서 경건함이나 신성함이 느껴진다기보다는 처연함과 묵직함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서품을 받지 못한 수녀는 구마를 할 수 없다’는 금기를 깨는데도 망설임이 없다. 영화는 김범신의 제자이자 ‘검은 수녀’라는 별명을 가진 유니아라는 인물을 통해 고정된 이미지를 탈피한 수녀 캐릭터를 정립하려 한다.

유니아와 비슷한 능력을 가졌으나, 이를 거부하고 악마를 믿지 않는 수녀 미카엘라(전여빈)도 타로 카드를 사용하며 색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일반적인 가톨릭 교회는 타로 카드나 점술과 같은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건 지양한다. 미래를 예측하거나 운명을 결정짓는 행위 자체가 신앙과 믿음이 아닌 외부의 힘에 의존해 교회의 교리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벗어나지 못한 트라우마와 유니아의 거침없는 행보에 반발심을 가졌던 미카엘라는 부마자 희준(문우진)을 마주하고 악과 맞서야만 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단단한 유니아와 상반된 이미지로 탕후루나 아이스크림 등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는 귀여운 구석도 보인다.

두 사람의 세례명 또한 각자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유니아’라는 이름은 신약성경 로마서 16장 7절(“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사도들 가운데서 유명한 사람들이요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던 사람들이니라.”)에 언급되는 인물이다. 성경에서 언급된 유일한 여성 사도로 해석되며 초대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신앙 지도자였다고 알려졌다. '미카엘라'는 성경에서 '대천사 미카엘(Archangel Michael)'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군대를 이끌어 악마와 싸우는 전사적인 천사다. 자신의 영적 능력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던 미카엘라가 유니아가 죽은 후 최준호(강동원)와 함께 12 형상과 싸울 거란 암시를 보며 과연 잘 어울리는 세례명이라 생각했다.

유니아와 같이 수녀 생활을 했다가 무당이 된 효원(김국희)은 행동이나 표정에서 유니아와 결이 비슷해 보인다. 영화 초반 효원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유니아에 미카엘라는 자신들은 수녀이고 명백히 지켜야 할 선이 있다며 강한 반감을 드러낸다. 그에 유니아는 무미건조하게 답한다.



“남들 눈에는 무당이나 수녀나 밖에서 보면 다 미친년이지요.”



위 대사로 ‘검은 수녀’가 기독교를 넘어 종교와 사회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여성들을 포괄적으로 상징함을 알 수 있다. 보통 사제보다 강한 기도의 힘, 타로 카드를 해석하는 능력, 신을 받아들인 무당. 이들의 특징을 조합하면 자연스럽게 중세 시대 속 ‘마녀’가 떠오른다. 강한 힘이 있을수록 적대시되던 여성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이어진다.




이용조차 못한 <검은 사제들>


<검은 수녀들>을 보면서 <검은 사제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불가피하다. 애초에 영화 곳곳에 심어진 전작의 흔적이 가득하다. 오프닝의 몽타주 씬부터 스토리의 흐름, 사건 전개, 자주 언급되는 김범신과 최준호. 그 외에도 어딘가 익숙한 이미지를 통해 이 영화로 <검은 사제들> 세계관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좋은 틀이 있다는 건 잘해야 본전이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전작의 감동을 해치기 때문에 오히려 독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속편이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숙제이기도 하다. ’ 수녀‘라는 색다른 소재로 정면 돌파를 시도했을지 모르나, 안타깝게도 필자의 시선에서 이 영화는 <검은 사제들>의 근처에도 닿지 못했다.


10년 전 개봉한 전작을 관람 직전에 보고 오지 않더라도 관객들은 보는 내내 어딘가 부족함을 느낀다.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미장센은 단정함을 넘어서 밋밋하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절제의 미’를 의도한 건지 고민하게 될 정도로 인물의 감정도, 공포도 덜어내며 거리감을 조성한다. 클라이맥스를 위한 계산된 장치일 거란 기대가 무색하게 영화는 끝까지 방관자처럼 악마와 수녀의 싸움을 지켜본다. 그로 인해 영화관 안에서 검은 수녀들과 악마의 싸움은 관객과 철저히 분리됐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드라마적 요소를 찾자니 유니아라는 독특한 인물과 특수한 상징들로 서사를 채우는 건 역부족이다. 결국, 이를 조합하면 <검은 사제들>의 아주 기본적인 뼈대와 이미지를 ‘수녀’라는 요소 하나만으로 단조롭게 엮어내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아쉬움은 비단 전작의 흥행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예전에 오컬트 장르가 소수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소비됐다면, 지금은 다양한 오컬트 및 공포 영화의 등장으로 전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게다가 OTT 서비스와 오리지널 시리즈가 활발히 등장하면서 관객들의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굳이 장르를 찾아보지 않아도, 종교가 없어도 장르에 자주 노출된 관객들은 영화의 어색한 부분을 충분히 찾을 수 있다. <검은 수녀들> 속 구마 의식 장면이 밋밋하고 지루하다는 혹평을 받은 이유는 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말통에 성수를 담아 뿌리는 장면은 분명 전례 없이 파격적이나, 마치 흥미를 끌어낼 방법이 이 카드밖에 없는 듯 계속 등장한다. 비장의 무기는 한 번만 썼을 때 효과가 있다. 장미 십자회의 도움으로 구마 의식에 사용할 물품을 받지만 활용도가 현저히 낮고 계속 비슷한 기도문을 외우며 악마의 이름을 물을 뿐, 전문적인 절차를 밟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검은 사제들> 속 구마 의식 장면과 가장 큰 차이를 빚는다. 김범신 신부는 최준호 부제에게 구마 의식과 12 형상에 대해 공부하고, 순서와 규칙을 지켜야 악마를 무사히 없앨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히 장르적 - 종교적 고증이 아니다. 악마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고, 구마 의식이 무사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길 바라는 간절함을 자아내는 역할인 동시에 스토리를 고조시키는 든든한 기둥이다. 사람들이 오가는 밝은 거리와 대조되는 어두운 골목을 교차해 보여주는 이유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엔 늘 어둠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리며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함이다. <검은 수녀들>이 교회를 향한 반항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과감히 생략하는 바람에 영화도 관객도 중심을 잃었다. 종종 <콘스탄틴>(2005)이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인공 ‘존 콘스탄틴’과 유니아는 꽤 비슷하다. 그러나 세계관도 다른 데다가 심지어 ‘존’은 종교적 활동을 할 뿐 사제도 아니다. <검은 수녀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억압받는 수녀’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콘스탄틴>이 언급되는 건 별로 좋은 신호는 아닐 것이다.



힘을 잃은 오컬트와 평면적인 여성 서사


<검은 수녀들>은 여성과 가톨릭의 관계를 풀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그러나 이미 힘을 잃은 오컬트 안에서 여성 서사가 살아남는 데는 한계가 있다. 유니아와 미카엘라, 무당 효원은 매력적인 캐릭터이지만 그것만 내세우니 전체적인 개연성이 떨어진다. '사람을 살리는 데 이유는 필요 없다.'는 두 수녀들을 움직일 가장 편리한 대사일 뿐이다. 적어도 희준과의 관계성이나 수녀라는 이유로 억압받은 과거, 희생과 죽음 사이의 내적 갈등만 보여줘도 인물들이 훨씬 입체적일 것이다.

미카엘라의 트라우마는 구마에 강한 반감을 드러내던 그녀가 희준에게 자신을 투영하며 성장할 수 있는 충분한 연결고리였음에도 이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 심지어 악마조차 악용하지 않고 그저 겁만 줄 뿐이다. 또한 바오로 신부(이진욱)를 통해 강한 영성을 가진 여성을 전통 교회가 어떻게 적대시하는지 구체화하며 의미를 확장할 수 있었지만, 이 역시 가볍게 짚고 흘려보낸다. 그렇게 민망할 정도로 의미 없이 비치는 인물이 된다. 구마 의식에 비협조적인 사제들의 대사도 은근한 긴장감을 조성하는 게 아닌, 주인공을 앞세우려는 장치로 다가와 영화의 큰 핵심인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적 구조마저 평평하게 그려진다.


좋은 소재와 탄탄한 뿌리를 가졌음에도 오컬트로서도, 두 여성 주연을 앞세운 영화로서도 중심을 잡지 못한 채 그저 배우에게 기대려고 했다는 점에서 <검은 수녀들>은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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