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GV 빌런 고태경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사랑할 용기

by 최목필


선생님은 무슨 힘으로 버티세요?



글을 쓰든,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분명 내가 원해서 하는 것들임에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공허함을 느낄 때가 있다.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는다. 이런 걸 공부한들, 대체 일상 생활 속에서 무슨 쓸모가 있지? 이거 운동 해서 뭐하나, 어차피 맥주 3잔 마시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거.


특히 심사 위원과 대중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예술 분야는 더욱 그렇다. 일단 좋아해서 하긴 하는데, 하다 보면 헷갈린다. 누구는 상업성이 있어야 영화라고 한다. 다른 이는 감독의 세계가 없으면 그건 껍데기라고 한다. '사람들이 봐 줘야 영화지.', '아니지. 설령 누가 보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끝까지 해야 예-술이지!'. 양쪽에서 와글와글 소리친다. 또 다른 이는 더는 영화는 팔리지 않으니 의미가 없다고 떠든다.


일단 키보드를 뚱땅거리며 뭐라도 쓰곤 있는데, 내가 이것들을 깊이 사랑할 수록 주위의 소음은 점점 커지고, 그 속에서 우린 정처 없이 흔들린다. 근데 또 흔들리면 예술이 아니래.


아니, 나보고 어떡하라고?




주인공 조혜나는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첫 독립 장편영화 <원찬스>라는 작품을 마지막으로 옥탑방 신세가 된다. 내가 <원찬스>를 찍지 않았더라면, <초록 사과>를 보지 않았더라면, 영화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선택의 후회에 사로 잡혀 있을 때, 우연히 참여한 프로그램에서 GV(Guest Visti) 빌런으로 유명한 고태경과 조우한다. 분명 무례한 말은 아니지만 혜나의 가슴을 쿡, 쿡 찌르는 고태경에 그녀는 참지 못하고 받아친다. 그리고 'GV 빌런 vs 감독 - 박종현 배우전'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고스란히 남는다.


화가 난 혜나는 같은 학교 동기 승호를 만나 영상을 보여주며 고태경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알고 보니 그는 '고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꽤 유명했다. 게다가 혜나가 가장 사랑하는 <초로 감독>의 조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그녀의 머리를 스친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자. 고태경을 포함해서 GV 빌런들의 얼굴을 붉힐 다큐를 만들어주마! 그렇게 <GV 빌런 고태경> 다큐멘터리 제작이 시작된다.




<GV 빌런 고태경>은 이렇게 무자비한 소음 속에서 사랑하는 것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키며 살아가는 이들을 조명한다. GV 빌런으로 유명한 고태경은 의외로 신사적이고 어린 혜나에게 함부로 무례를 가하거나, 불필요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게다가 GV 때마다 좀 짜증나긴 하지만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관객들에게 주위를 줘 관람 환경을 쾌적하게 만들어주고, 대충 일하는 어린 영사기사를 혼내는 등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결국 그를 빌런으로 만드는 것은 날카로운 질문들이 아니라 단 한 가지를 꺾이지 않고 오랫동안 사랑한 태도다. 그를 가까이에서 촬영하는 혜나는 그런 그의 영화 사랑에 어떤 불편함을 느끼며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고태경은 자신이 영화를 찍게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등장인물처럼 느껴졌다. 그는 정말 손에 잡힐 작품을 준비 중인 걸까. 아니면 그저 허황된 신기루를 좇고 있는 걸까. 나타나지 않는 유에프오를 기다리는 사람이 여기 한 명 더 있군. 그러나 뭐라도 우주에 쏘아 올려야 외계로부터의 신호가 돌아오든지 할 것 아닌가.


본문 100-101페이지



나는 고태경과 나를 동일시하는 동시에 고태경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다.


본문 116페이지





고태경을 향해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저것들은 전부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다큐멘터리를 완성하기 전까지 혜나는 '나'와 '내가 만든 영화'의 쓸모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 '구린 영화를 찍으면 구린 사람이 되는 거야.'라는 조병훈 교수의 말은 끊임 없이 <원찬스>와 혜나를 괴롭리고, 그렇게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는 웃픈 마음으로 직접 불법 사이트 토렌트에 영화를 올리는 지경에 이른다. 제발, 나와 내 영화를 좀 봐주세요. 욕이라도 좀 써달라고!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 자격 지심 하나 없이 오랜 시간 영화 만을 사랑한 고태경의 모습은 대단하면서도 결코 닮고 싶진 않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영화를 찍으면 가슴이 뛴다. 이런 무의미한 짓은 생계에 도움도 안 되고 상업적으로 흥행도 못하겠지만 여전히 혜나의 카메라는 돌아간다.


그러는 동안에 혜나의 주변 영화인들을 하나, 둘 그녀만 남겨두고 탈영(탈 영화)한다. 계속 사랑하고 싶어서, 혹은 더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 지긋지긋해서 그만둔다. 그리고 혜나가 사랑했던 이도 곁을 떠난다. 혜나는 자신의 인생을 스크립트라고 상상하며 시원하게 '오케이!'를 외치지 못하고, 그렇다고 결단력 있게 'NG!'도 외치지도 못한 채 지지부진하게 'Keep'만 가져온 순간들을 떠올린다.


결코 무너진 적 없어 보이는 고태경의 삶도 다르지 않다. 지워져 가는 것들을 여전히 품에 끓어 안고 사는 사람. <초록 사과> 감독이자 '오야붕'인 최강호 감독의 장례식장에서 잠시 빠져나와 혜나와 단둘이 24시간 해장국 집에 간 고태경은 눈물을 참지 못한다. 잘 묻어뒀다고 생각했던 수많은 NG의 순간들이 소중한 사람의 죽음에 기다렸다는 듯 그를 덮친다.




만약 그때 데뷔를 했다면. 그때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더라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기회에 가까이 가서 더 괴로웠을 날들. 자신의 선택으로 사라진 '만약'의 이야기들. 나는 밤마다 작업실에서 편집기의 조그셔틀을 거꾸로 돌려보는 고태경을 떠올렸다.




본문 219쪽.




후회만 남았음에도 그들은 계속 영화를 찍고, 보고, 사랑한다. 그래서 새로운 '원찬스'를 맞이한다. 토렌트에 손수 올렸던 <원찬스>가 승호가 언급했던 해외 영화제에 초청 받고, 영화제에서 꼭 상영하겠다고 거짓(?) 확신했던 <GV 빌런 고태경>은 정말로 서울 영화제에서 <초록 사과>와 함께 상영된다. 지금의 고태경이 담긴 다큐멘터리, 그리고 지금의 조혜나를 만든 <초록 사과>와 함께 그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사랑하는 것들을 계속 사랑할 용기를 얻는다.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




본문 241쪽.




무의미한 것을 유의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곧잘 언급되는 돈, 명예, 성취가 그 요소가 될 지도 모른다. 책을 다 읽은 후에 상상했다. 만약 다큐멘터리를 영화제에서 상영하지 못했다면, 혜나와 고태경의 시간과 기록은 전부 무의미했을까? 이번에도 틀린 찬스, 쓸모 없는 'NG'였을까?


옛날에 영화학과에 다닐 때, 편집 부장이었던 내 친구가 내게 편집을 가르쳐주며 한 말이 있다.


"OK컷만 뽑지 말라고 했지. 무조건 찍은 건 일단 다 넣어봐야 해."


어차피 현장에서 OK가 된 걸로 편집하는 거 아니냐고 무식한 말로 따졌다고 호되게 혼났다. 모르는 거야. 다 붙여봐야 아는 거야. 친구가 단호하게 말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쓰고 있는 글과 그의 목소리가 함께 떠올랐다. 나는 공식적으로 인정 받은 작가는 아니지만, 계속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언젠가 내가 쓴 이야기를 손에 쥘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고 기대하긴 하지만, 실상은 자주 무너지는 중이다. 5명 볼까 말까 한 글을 하루에 5시간이 넘게 할애하며 쓰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과학자도, 천문학자도 문학을 쓰고 상을 받는 시대이다.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번에 쓴 글은 NG일까 Keep일까, OK일까?


영화고 글이고 나발이고 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도 혜나는, 고태경은, 우리는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아무도 봐주지 않을걸 알지만, 그래도 쓴다.




왜냐면 우리는 이걸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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