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

우리 다음 생에 또 같이 놀자

by 최목필


너희를 만날 수만 있다면, 내세에 큰개미핥기여도 좋아.




이전 리뷰 <나기의 휴식>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할 일본 드라마는 <브러쉬 업 라이프>다. 이 작품도 추천과 호평이 굉장히 많았기에 계속 가슴에 품고 있다가 드디어 볼 수 있었다.


평범한 공무원 콘도 아사미(안도 사쿠라)는 소꿉친구 나치, 미퐁과 함께 미퐁의 생일을 기념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편의점 앞에서 바람에 날아간 쓰레기를 줍다가 교통사고로 33살에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


눈을 뜨자 새하얀 곳에 도착한 아사미는 데스크에 앉아 있는 남자의 안내에 따라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고 새 생명으로 태어날 준비를 한다. 왼쪽 문으로 걸어가던 그녀는 다시 돌아와 다음에 어디서 태어나는지 묻고, 내세에 자신이 '과테말라 남동부의 큰 개미핥기가 된다는 걸 알게 된다. 원하는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에는 아사미의 덕이 부족했고, 자신이 상대하던 민원인을 떠올리며 포기하려던 찰나, 남자는 '콘도 아사미'로 현세를 다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아사미는 오른쪽 문으로 향하며 인생 2회차를 살게 된다.


이야기는 꽤 과감하게 흘러간다. 총 10개의 에피소드 동안 아사미는 5번 다시 살게 된다. 매번 똑같은 환경에서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살짝 지루한 부분이 있지만, 아사미는 매번 다른 직업을 선택하며 삶을 새롭게 꾸려간다. 2회차에서는 약사, 3회차는 드라마 PD, 4회차에서는 의학 연구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5회차에서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파일럿이 된다.





알고 보니 타임 리퍼(아사미와 마리는 유치하다고 했지만)는 주변에 꽤 있었다. 4회차 때 덕을 쌓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느라 나치, 미퐁과 친해질 기회를 놓친 아사미는 2회차 때부터 범접하기 어려웠던 전교 1등 마리(미즈카와 아사미)와 친해진다. 알고 보니 마리도 타임 리퍼였고 자신은 5회차라고 말하며 원래 나치, 미퐁, 마리, 아사미 이렇게 4명이서 함께 다녔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자신이 1회차 생에 나치, 미퐁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고 남은 둘이 굉장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아사미가 충격 받지 않도록 최대한 정리해서 알려준다. 이번 생에 두 사람을 구하면 다 같이 파스타를 먹기로 약속하지만, 사고를 피하지 못하고 셋은 일찍 생을 마감한다. 홀로 남은 아사미도 처음으로 오래 버티나 싶었지만, 공사장을 지나가다가 자재에 깔려 사망한다.


다시 하얀 공간으로 돌아온 아사미는 내세에 인간으로 살 수 있음에도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타임 리프를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시 태어난 마리에게 둘만 아는 신호를 보내며 이번에는 꼭 나치와 미퐁을 살리겠다고 다짐하며 함께 파일럿이 될 준비를 한다.



이야기는 담백하게 흘러간다. 너무 무겁지도, 우습지도 않게 매번 생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아사미와 친구들의 끈끈한 우정을 보여준다.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홀로 끈질긴 싸움을 해온 마리도 다양한 별명이 생기면서 이들과 함께한다.


'타임 리프'라면 뭔가 히어로 영화처럼 거창하게 세상을 구할 것 같지만, 이들의 n회차 인생은 개미처럼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그게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우리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 적 있지 않은가?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면 어땠을까?'


아사미의 생을 통해 그 답을 알 수 있다. 크게 변하는 것은 없다. 다만, 조금 더 착실해진다.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가망 없는 꿈에 사로잡힌 친구도 신경 써야 하며, 변태로 오해 받게 될 선생님도 매번 까먹지 말고 구해야만 한다. 처음엔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덕'을 쌓는 목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알 수 있다. 아사미와 마리가 진심으로 이들을 걱정한다는 걸. 사춘기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아버지를 향해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차마 조절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잘 참아낸다. 이 현실적인 히어로들이 나쁜 마음을 먹은 순간은 딱 한 번이었다.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서.


드라마는 꾸준히 우정과 삶에 대한 주제를 던진다. 연애 얘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그래서 좋았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들은 같은 농담을 하며 똑같은 장면에서 웃는다. 아니, 이전 생보다 더 크게 웃는다. 더욱 감사하고 친구들을 사랑하며 기쁜 마음으로 가족을 챙긴다.




신기하지 않아?


뭐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체험이 소중한 것 같아.


그건 그래. 원래 마지막이었을 테지만.


그렇지. 지금까지도 대충 살려고 하지 않았지만


마지막이라고 하면 굉장히 소중한 것 같아.


(9화 中)



위의 대화로 드라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진다. 여러분은 혹시 마지막 생의 즐겁고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진 않나요? 잔잔하게 흘러가던 이야기가 가슴에 훅 와 닿았다. 드디어 내세에 인간으로 태어날 수 있음에도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타임 리프를 고민하는 아사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떠올라서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녀와 같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나의 친구들이 보고 싶었다.


너희랑 같이 떠들 수만 있다면, 영양가 없는 농담을 던지고 서로를 놀리며 깔깔 웃는 순간을 다시 맞이할 수만 있다면 나도 몇 번이고 꼭 다시 태어날 거야. 다음 생에 개미핥기나 갯강구가 되어도 좋아. 100살까지 허공에 뜨는 휠체어를 타고 시시한 농담이나 하면서 그렇게 함께 하자.


이번 생도 너희와 함께해서 참 소중했어. 또 만나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