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나가고 있었다

장면

by 현 Hyun



평상시에 엄마는 강행군의 스케줄에 쉽게 녹초가 되신다. 그런데 이 날은 유독 피곤하지도 지치도 않은 모습이었다. 봄을 맞아 활짝 핀 유채꽃 같은 노란 스웨터 안에서 얼굴이 화사해 보였다. 가까운 지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부고를 듣고 멀리 상을 다녀오셨다. 나이가 드신 노인이 시장에서 뒤로 넘어지셨다. 두개골에 금이 갔다. 뇌가 손상이 되어서 의식이 없으셨지만 일주일간 숨이 붙어 있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엄마의 표정에는 흥분이 묻어났지만 슬픔이 없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조깅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융 심리학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빠르게 걸었다. 듣고 있으니 내가 지난 1년 동안 반복해서 꾸는 꿈의 실마리가 잡혔다. 꿈에는 공항이나 정거장 또는 이동수단인 기차나 자동차가 나오는데 이런 꿈이 변화를 갈망하는 무의식이 반영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한동안 멈추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의미를 붙이려다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만두었다. 나를 앵커하지 않은 채로 그냥 달리고 있다. 나는 이방인처럼 숨을 쉬고 있다. 예전에는 어딘가에 맞춰 들어가던 때가 있었다. 나는 몇 군데에 들어가 '안정'이라고 불리는 것을 느껴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나를 어딘가 맞추기 보다, 움직임이 나를 이끄는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찻길 옆 도로에서 달리다 숲에서 달리기 위해서 중앙묘지로 방향을 튼다. 입구를 들어서자 흙으로 더럽혀진 큰 트럭 여러대가 주차해 있는 것이 보였다. 봄을 맞이하면서 가드너들이 보수하고 새로운 식물을 심느라 분주하다. 수많은 작은 오솔길이 있는 묘지는 마치 미로 같다. 오솔길을 따라 달리면 옆 큰길에서 움직이는 트럭이 나무 사이로 간간이 보였다.


평일 오전에 무덤을 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거나 심지어 전동 킥보드를 타는 사람도 만난다. 무덤에서 달리는 게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장례식이 진행 중인 곳에서 누군가는 울고 있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상황을 마주하면 나는 잠깐 멈춰서 다른 길을 찾는다. 내가 저 장면에 맞지 않다는 생각에 속도를 늦추고 몸을 돌린다.


내 발소리와 숨소리로 그들의 정적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을 멀리서 바라본다. 그들은 타인보다 더 타인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옷을 입었다. 나는 초록색 티셔츠에 남색 레깅스를 입고 스포츠화를 신고 있다. 묘지는 그들에게 슬픔의 장소이지만 나에게는 신선한 공기가 가득한 곳일 뿐이다. 시끄러운 차 소리를 나무가 가려주는 곳이다. 우리는 같은 장소에 있지만 다른 시간 안에 있다.




무덤에서 뛰다가 나는 반짝이는 묘비나 살아 있는 생화가 있는 무덤을 보면 멈춰서 연도를 확인한다. 최근에 묻힌 이들도 많다. 마주치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발견한다. 그의 눈은 반짝였고 여기저기 고개를 돌리며 두리번 거린다. 산책을 나온 커플들도 마주한다. 그들의 뭔가 기대하는 표정에서 나는 이 장소가 어떤 장소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저녁이 되면 묘지 지킴이가 차를 타고 온다. 묵직한 열쇠더미를 갖고 중년의 아저씨가 차에서 내린다. 선글라스를 머리에 올리고 달라붙는 티셔츠가 나온 배를 더 돋보이게 했다. 운전석 옆에는 동행하는 사람도 있었다. 묘지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기에 그 분은 차를 타고 무덤을 크게 한 바퀴 돌며 문을 하나씩 잠근다. 그렇게 저녁이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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