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고단한 삶을 살아낸다
한 낮인데도 찬 기운은 여전하다. 봄이 오는 걸 시샘하는지 동장군의 생색내기가 요란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는 읍내 곳곳에 달걀을 배달한다. 관공서와 학교, 아파트와 사무실과 가게들을 돌며 한 주간의 안부를 묻고 차와 커피도 얻어 마신다.
어느 날처럼 읍내 중심가에 사람이 드물다. 구름마저 낮게 깔려 더욱 을씨년스러운 날씨다. 드문 드문 좌판을 펼친 분들의 얼굴도 가라앉아있다. 가게 한 곳에 배달을 하기 위해 들어가려는 데 싱싱한 냉이를 한 광주리 팔고 계신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이른 듯한데 많은 양의 냉이를 가지고 나오셨다. 주름은 깊고 허리는 굽으셨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계신다.
행인이라도 많으면 좋으련만 뜸한 발걸음들 마저 그냥 지나쳐 간다. 냉이를 만지작만지작 다듬고 계시는 모습이 더없이 외로워 보인다.
순간, 냉이를 한 봉지라도 살까 하다 발길을 돌렸다.
오후엔 달걀을 택배로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간다. 늘 일정한 시간을 오가는 길이지만 보이는 모습은 다양하다. 오전에 비해 사람들이 많다. 계절은 아직 겨울의 끝자락. 해가 일찍 저무는 읍내의 풍경은 어수선하고 분주하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할 시간이지만 모두들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듯 잰걸음으로 오간다.
그 풍경들 사이로 선명하게 들어오는 누군가가 있다.
손수레를 끌고 폐지를 주우러 다니는 아저씨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다. 몸은 약간 기울었고 다리를 살짝 절었다. 의외로 얼굴은 편안하고 웃는 인상이다. 그 얼굴이 마음을 더 아리게 한다.
가장 번화한 읍내 사거리에 가면 장애가 있는 두 동생을 데리고 폐지를 모으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연로하신 어머니도 나오셔서 모아 온 폐지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데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 궁금했지만 아직 안부를 묻지 못했다. 장애가 있는 두 동생은 남매다. 나와 잘 아는 사이다. 우리 농장에 체험도 오고 가끔 복지관에 가서 만나기도 했다. 읍내에서 마주치면 하이파이브를 한다. 가끔씩 피로회복제도 사주곤 했다. 민망할 정도로 고마워한다.
언젠가 아는 형님의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종이박스를 보고 아주머니께 연락드려 가져 가시라고 했다. 양이 너무 많아 옮길 수가 없어 주저하길래 화물차로 실어다 드리겠다고 했다. 한참을 넘치도록 쌓고 쌓았다. 아주머니가 거래하는 고물상으로 갔다. 함께 가는 동안 이 정도 양이면 어느 정도 돈이 되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뿌듯했다. 의기양양하게 도착해서 집게차로 폐지를 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실을 때는 한 참 이었는 데 내리는 건 순간이었다. 고물상 주인은 호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나는 멈칫했다. 이 많은 양의 폐지값이 만원이라니. 그럼 이 가족들이 날마다 모아서 받는 폐지값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하루 종일 그렇게 열심히 주워 나르고 골라가며 차곡차곡 쌓아 올려 가족 서너 명이 일해서 버는 돈이 고작 몇 천 원이다.
지금도 사거리 모퉁이에서는 부지런하면서도 무던한 삼 남매가 읍내 곳곳의 폐지를 모으고 있다. 돈보다는 습관처럼 일하는 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다. 아무리 해도 돈이 안 되는 데 너무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따뜻한 음료밖에 건넬 수 없어 미안하다.
우체국에 들러 달걀을 내려놓고 다시 읍내 중심가로 접어들었다. 오전에 들렀던 가게 쪽을 지나가는 데 냉이를 팔고 계신 할머니가 그 모습 그대로 앉아 계셨다. 냉이는 언뜻 보아 그대로였다. 정말 냉이를 하나도 팔지 못한 것일까? 묻고 싶어도 물을 수 없었다. 주름진 얼굴과 굽어진 등만이 또렷하다.
폐지 수레를 끌고 가는 아저씨의 얼굴도 떠올랐다.
팔려고 내놓은 것이나 주워 팔려는 것이나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 날들이다. 노동의 대가를 되돌려 받지 못하는 야속함과 고단한 삶의 방편을 하소연할 길이 없다. 무거운 삶의 짐이다. 무심한 세월의 무게만 더 해간다.
부디 한 움큼의 냉이와 한 무더기의 폐지가 그분들에게는 밥벌이의 전부가 아님을 믿고 싶다.
머뭇하다 냉이 한 봉지 사 오지 못한 아쉬움이 짙게 스미는 차가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