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이후로 아무것도 안한 적이 없다.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거나 알바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변호사시험 결과가 아직 안나왔고 취업처도 정해지지 않은 지금은 텅 빈 상태다. 어쩌면 사람은 태어날 때 텅빈 상태로 태어나는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인간의 본연의 모습은 텅 빈 상태다. 나는 오랫동안 본연의 모습을 잊거나 외면하고 살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게 어색함과 당혹감을 준다. 나는 평생 '하는 것(doing)'으로 나 자신을 정의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하는 것(doing)의 치장물이 사라지고 존재(being)과 맞닥뜨리게 되니 당혹스러운 것이다. 벌거벗은 느낌이 든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내게 선택지는 두 가지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다시 헤매는 것과, 존재로서의 나를 직면하기.
자꾸만 전자로 도망치려는 내가 있다. 존재로서의 나를 직면하기 두려워서일 것이다.
하는 것(doing)으로 가리개를 하지 않는 나는 보잘것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감추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