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끝났지 2주 남짓 되었다. 못 만났던 사람들도 만나고, 못 봤던 영화나 책이나 전시도 보고 겉보기엔 알차게 지내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 한켠의 불안함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감각이 마음 한 구석에서 도사리고 있다가 불시에 습격해온다. 그 습격은 보통 고요한 순간에 찾아오므로, 계속해서 뭔가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뭔가에 억눌려있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반응은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라는데, (모건 하우절) 남들보다 늦고 뒤쳐졌다는 감각 때문인지 마음이 불안하다.
불안함의 이유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나는 혼자 워드로 표까지 만들어가며 계획을 세웠다. 변시 합격 발표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행정사 시험을 준비하기로 했고, 변시 불합시에는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행정사시험을 준비하려고 했다. 행정사시험은 1차가 5월 말, 2차가 9월 말 경에 있다. 변시 합격시에는 변호사 자격을 가지고 취업을 하면 된다.
왜 계획을 세웠는데도 불안할까? 행정사 시험 준비를 위해 교재도 샀다. 오늘 교재가 배송되었길래 훌훌 훑어봤다. 일단 행정법 교재를 샀는데,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면서 행정법을 공부했었기 때문에 내용이 익숙하다. 난이도도 변호사시험보다 훨씬 낮다. 그런데 왜 불안하지?
행정사 시험을 제대로 준비할 마음가짐이 안되어서 그런 것 같다. 분명 지금 공부해두면 설령 변호사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이후 일을 하는 데 도움이 안되진 않을텐데. 교재를 붙잡고 차근차근 풀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 같다.
스무 살 이후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조언을 받아온 언니가 있다. 그 언니가 로스쿨에 가서 변호사가 되었다는 점이 내가 로스쿨에 가기로 결정했던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인생의 롤모델 같은 언니다. 언니는 내게, 그냥 덮어놓고 쉬는 것이 성격상 쉽지 않다면 영어공부를 하라고 했다. 변호사가 된 후에, 공익활동을 할 때 (언니는 공익변호사다) 생각보다 영어를 쓸 일이 꽤 있는데, 영어 실력에 자신감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영어 학원에서 토플 강의 등을 하시는 고모부한테 영어 공부용 자료도 한가득 받아왔다. 그런데 그 자료도 펼쳐보질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엉망진창이다. 뭐 하나 제대로 시작하질 못하고 있다.
지금 내 과도기적인 시기에 나처럼 방황하는 것은 어쩌면 정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핵심은 이 방황이 날 괴롭게한다는 것이다. 생각도 안날 만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항상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어쩌면 생애 처음으로 목표와 방향을 잃었다. 이 감각이 낯설고 조금 괴롭다.
나는 타고난 성정이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 그 불안도를 낮추기 위해서 항상 계획을 꼼꼼히 세우곤 했다. 그런데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가시지 않는 불안함도 있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