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by 최단감


오늘은 오랜만에 (거의 1년 만에) 성당에 갔다.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자 내가 간절히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성당에 간 건 10살 무렵 엄마 손에 이끌려서였다. 어머니도 그때 나와 같이 세례를 받았지만 그 후 불교로 개종하셨다. 그래서 천주교 집안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성당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릴 때 기억은 힘이 크다. 신부님의 하얀 사제복, 다 같이 성가를 부르는 미사시간, 주송으로 피아노를 치던 기억은 종교, 특히 천주교에 대한 익숙함을 내게 남겼다.


20대 후반에 마음이 힘들 때 집 근처 성당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거의 20년만에 성당엘 갔다. 아마 마음의 의지처를 찾기 위해 간 것일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힘들 때 종교에 의지하고, 나도 보통의 사람이니까. 오랜만에 성당을 찾은 뒤로도 종종 성당에 갔다. 성당의 청년부 모임이나 성서 읽기 모임 등에는 들지 않고 그저 아는 사람 없이 조용히 미사를 보고 기도하고 나오는 식이었다.


신심이 깊냐고 하면 그리 깊지 않다. 미사에 가는 이유도 오랫동안 성경을 공부한 전문가(=사제)의 입을 통해 오래된 이야기(=성경)를 들으러 간다는 감각이 크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사에 참석하고 성당에서 기도한다는 행위가 내게 어떤 '계보'를 잇고 있다는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천년, 2천년 전에도 사람들은 모여서 기도했을 것이고 그 행위가 이어져 나에게까지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 내가 외톨이가 아니라 거대한 서사에 포함되어 있는 인간이라고 안심하게 된다. 그 정도의 이유로 성당엘 간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서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살아 생전에 말씀하신 어록을 모아놓은 책을 샀다. 위대한 인간이 쓴 글을 읽고 싶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은 간명하면서도 강렬하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존경한 이유를 알 것 같다. 가톨릭 문화에 거부감이 없고 익숙하기 때문에 이 책을 사서 보게 된 것에 만족하고 감사한다.


'죄'라는 말의 그리스어 원어인 '하마르티아(hamartia)'는 '과녁을 빗나감, 목표에 도달하지 못함'이라는 뜻이다. 즉 가톨릭에서 말하는 '죄인'이란, '과녁을 빗나간 사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나는 종교적으로 미성숙하고 신심이 깊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모두 죄인, 즉 조금씩 과녁을 빗나가고, 목표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나 또한 그렇다. 종교의 세계는 깊고 넓어서 이런 부족한 나도 넉넉히 품어 줄 수 있는 장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급해지지 않는다. 부족한 나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간.


나는 그게 종교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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