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백

by 최단감


1.

클레르 마랭은 저서 <제자리에 있다는 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책의 여백에 기록한다. 우리의 실존 역시 중심 텍스트와 여백의 기록이 대화하는 와중에 짜이는 게 아닐까? 우리 삶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과 결코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는 페이지의 빈 공간에 자수를 놓으며 자신을 형성한다. 그것이 바로 샛길의 매력이다. (...) 책의 여백에서 얼마나 많은 대화가 이루어지는가? 삶의 여백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이 다시 시작하는가?


삶의 여백이라. 좋은 말이다. 위 글을 읽고 내 삶의 여백이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2.

오늘 에드워드 버틴스키의 <추출, 추상>이라는 사진전을 봤다. 인간이 산업, 농업 등으로써 자연을 어떻게 개조하고 훼손하는지에 대해 비판적 시각에서 항공뷰로 찍은 스케일이 큰 사진들이다. 구리를 채굴했던 광산, 오염물질이 노출된 강, 대규모 농업 단지 등.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들을 감상하면서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가는 어떤 의도에서 이 사진들을 아름답게 찍은 걸까 생각하면서 집에 돌아왔다.


내 생각에 버틴스키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나처럼 이런저런 '생각' 자체를 하게끔 만드려고 아름다운 사진을 찍은 것 같다. 인간이 어떤 '생산'을 위해 자연에 가하는 변형들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하고 싶은데, 인간은 보통 아름다운 것에 끌리고 추한 것은 기피하기 때문에, 한번 더 자연 훼손이라는 현상에 주목하고 고민하게끔 사진을 아름답게 찍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자연 훼손은 인류가 해결해야할 심각한 난제인데, 왜 아름답지?’라고 뭔가 이상함을 느끼게 해서 이 주제를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3.

나에겐 이런 생각과 경험들이 삶의 여백이다. 그런데 어느새 이 여백을 내 삶의 "본문"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는 내가 있었다. 그런 스스로에게 조금 질리고 피곤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 "본문"을 어서 채워서 완결시키고 싶다는 조급증에서 오는 생각일 것이다. 분명 여백은 본문이 아니기 때문에 여백일 것인데도.


내 삶은 "본문"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백"까지 아울러 비로소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은 삶을 조금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시험이 끝나고, 내 삶의 "본문"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하던 차였는데, 한편 내 삶의 여백에는 어떤 것들이 쓰여져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는, 그런 밤이다.


끝.

작가의 이전글변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