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락길

by 최단감


문간 밖에서 한동안 서성이던 봄이 굳게 마음먹고 문간을 넘어 고개를 슬몃 들이밀었을 때, 나는 은영언니와 인왕산 자락길에 걸어 들어갔다.

독립문에서부터 자락길에 진입해 걷다가 사직단 쪽으로 빠져나왔다.


언니와 두런두런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걸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결국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대화가 애틋함과 실망, 애착과 이별, 동질감과 이질감 사이를 건너다보면 나는 지금 누가 보고싶은걸까 하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언니는 그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워할 대상이 없다는 건 자유롭다는걸까, 스스로에게 갇혀있다는걸까? 갇혀있는 동시에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건 더 독립적이고 강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방증일까, 아니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일까?


오늘 아무리 자락길에서 코를 킁킁대봐도 봄 내음은 맡을 수 없었다. 아직 문간으로 봄이 얼굴만 들이미는데 그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인간이 오감으로 봄이 왔음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해도 결국 봄은 도래하는 것이긴 하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그게 분명 사랑이었음은 변하지 않듯이 말이다.


끝.



작가의 이전글나쓰메 소세키 읽기(1) : <춘분 지나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