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주역 세 번째 읽기

제31장. ‘썸’의 설렘, 모든 관계의 시작: 함괘(咸卦 ☱☶)

by 최동철

제31장. ‘썸’의 설렘, 모든 관계의 시작: 함괘(咸卦 ☱☶)


1. 서두: 마음을 얻는다는 것의 신비

주역의 후반부, 하경(下經)은 인간사의 문을 열며 우리에게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리더는 어떻게 팀원의 마음을 얻고, 기업은 어떻게 고객을 사로잡으며, 한 사람은 어떻게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얻는가? 그 시작에는 언제나 논리적인 설득이나 강압적인 힘을 넘어서는, 순수하고 자연스러운 ‘이끌림’이 존재합니다.

하경의 첫 번째 괘이자 서른한 번째 괘인 택산함(澤山咸)은 바로 이 ‘감응(感應)’의 신비를 다룹니다. ‘함(咸)’은 ‘느끼다(感)’라는 글자에서 마음(心)을 뺀 형태로, 어떤 의도나 사심도 없이 순수하게 서로를 느끼고 통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는 주로 젊은 남녀 간의 순수한 사랑을 상징하지만, 나아가 모든 인간관계가 시작되는 출발점을 보여줍니다. 괘의 형상은 젊은 남자(☶艮, 산)가 젊은 여자(☱兌, 연못)에게 자신을 낮추어 다가가는 모습입니다. 함괘는 우리에게 진정한 관계의 문은, 강함이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함으로 부드러움을 두드릴 때 비로소 열린다고 말합니다.


2. 원문 해석: 순수한 이끌림의 조건

卦辭(卦辭) 咸 亨 利貞 取女吉 (함 형 이정 취녀 길) 함(咸)은 형통하니, 올곧음이 이롭다.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 길하다.

순수한 감응은 그 자체로 막힘없이 통하는(亨) 길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이끌림에는 반드시 ‘이정(利貞)’, 즉 올곧음이 이롭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이는 순간의 충동적인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가 올바른 도리와 사회적 책임으로 나아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올바른 감응의 가장 이상적인 결실은 ‘취녀길(取女吉)’, 즉 남녀가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사랑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가정을 이루는 공적인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므로 길(吉)하다고 하였습니다.


3. 철학적 통찰: 마음을 비워야 세상을 얻는다

彖曰 天地感而萬物化生 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하늘과 땅이 감응하여 만물이 변화하여 생겨나고, 성인이 사람의 마음에 감응하여 천하가 화평해진다."

함괘는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응을, 천지만물의 생성 원리와 성인의 통치 원리라는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시킵니다. 하늘과 땅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낳듯, 위대한 지도자(성인)는 백성의 마음에 감응하여(感人心) 평화로운 세상을 이룹니다. 이처럼 ‘감응’은 우주와 인간사를 관통하는 핵심 작동 원리입니다.

象曰 山上有澤 咸 君子以 虛受人 (상왈 산상유택 함 군자이 허수인) "산 위에 연못이 있는 것이 함괘의 상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마음을 비우고 사람을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과 진정으로 감응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허수인(虛受人)’에 있습니다. 산(艮)이 자신의 정상을 비워 움푹한 연못(兌)의 물을 받아들이듯, 군자는 자신의 마음을 텅 비우고(虛) 다른 사람의 감정과 의견을 온전히 받아들여야(受) 합니다. 나의 선입견, 아집, 판단을 내려놓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이 겸허한 마음의 공간이야말로 진정한 감응이 싹트는 유일한 토양입니다.


4. 현대적 적용: 감응의 6단계, 발끝에서 혀끝까지의 여정

함괘의 여섯 효는 감응이 신체의 각 부위에서 점차 위로 올라오는 과정에 비유하여, 감정의 발전 단계를 매우 흥미롭게 묘사합니다.

1단계: 발끝의 미미한 충동 (초육 初六) - ‘엄지발가락에서 느끼다.’

감응의 시작 (咸其拇): 감정이 이제 막 엄지발가락에서 시작된, 무의식적이고 미미한 단계입니다. 움직이고 싶은 뜻(志)은 생겼지만, 아직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2단계: 성급한 움직임의 유혹 (육이 六二) - ‘장딴지에서 느끼다.’

감응의 고조 (咸其腓): 감정이 움직임을 주관하는 장딴지까지 올라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경고: 그러나 이때 경거망동하면 흉(凶)합니다. 아직 때가 아니니, 가만히 머무는 것이 길(居吉)합니다.

3단계: 맹목적인 추종 (구삼 九三) - ‘넓적다리에서 느끼다.’

감응의 폭주 (咸其股): 감정이 이성을 마비시켜, 맹목적으로 상대를 따르려는 욕구에 사로잡힙니다.

경고: 이렇게 주체성 없이 감정에만 이끌려 나아가면(往吝), 결국 부끄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4단계: 이성으로 감정을 다스리다 (구사 九四) - ‘마음(등)에서 느끼다.’

감응의 성숙 (貞吉悔亡): 감정이 드디어 마음의 영역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감정의 두근거림(憧憧往來)을 올곧은 이성(貞)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나의 생각이 순수하고 올바르니, 친구들도 그 진실된 생각(爾思)을 따르게 됩니다.

5단계: 굳건한 마음의 감응 (구오 九五) - ‘등심에서 느끼다.’

감응의 완성 (咸其脢): 감정이 감각이 둔한 등심, 즉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설렘을 넘어, 변치 않는 굳건한 마음으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합니다. 후회할 것이 없는 경지입니다.

6단계: 말뿐인 가벼운 감응 (상육 上六) - ‘턱과 뺨과 혀에서 느끼다.’

감응의 타락 (咸其輔頰舌): 감정이 가장 위쪽인 입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마음의 깊이가 없는, 오직 혀와 입으로만 떠드는 피상적이고 가벼운 감응입니다.

경고: 진실함 없는 말뿐인 감응(滕口說也)은 가장 저급한 관계의 모습입니다.


5. 마무리 성찰: 당신의 감응은 어디에서 오는가?

함괘는 우리에게 모든 관계의 성패가 ‘감응의 깊이’에 달려있음을 가르쳐줍니다. 당신의 마음은 지금 어디에서 느끼고 있습니까? 충동적인 장딴지의 욕망입니까, 마음 깊은 곳의 굳건한 울림입니까, 아니면 혀끝에서 맴도는 가벼운 말장난입니까?

모든 위대한 관계는 ‘허수인(虛受人)’, 즉 나를 비우고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려는 겸허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나의 마음이 텅 비어 있을 때, 비로소 상대의 마음이 그 안으로 흘러 들어와 진정한 감응의 연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기꺼이 정상을 내어줄 고요한 산 하나를 준비해두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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