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과 삶에 여백이 필요한 이유
연말을 앞두고, 회사에서 ‘그로스 리뷰(Growth Review)’를 진행했습니다. 가장 많이 협업한 동료 최대 5명을 지정하여 나와 업무를 하며 어땠는지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는 제도인데요. 이 기간에는 동료에 대한 리뷰도 작성하지만, 나는 6개월 간 어떤 업무적 강점을 발휘하며 일했는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셀프 리뷰도 작성합니다. 덕분에 지난 한 주간 매일 2-3시간씩을 할애하여 저와 제 동료들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리뷰 작성을 모두 마쳤던 게 지난 목요일인데, 그날 저녁 형석님을 오랜만에 뵈었지요. 어묵탕을 앞에 두고 술잔을 부딪치며 제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를 여쭌 것도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형석님은 제가 어떤 걸 보완하면 더 좋다고 생각하실지가 특히 궁금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지희랑 안 맞는 사람은 피하거나 멀리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 너무 비슷한 사람만 가까이 두려고 하지는 마.”
사실 제가 너무나도 잘 아는 제 단점 중 하나였어요.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했죠. 그런데 형석님과의 대화 후 혼자 보내는 토요일이었던 오늘, 서점에서 <여백 사고>라는 책을 사 읽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아트 디렉터이자 디자이너인 ‘야마자키 세이타로’가 쓴 책이었어요.
저자는 일, 인간관계, 커뮤니케이션, 성장 즉 삶의 모든 면에서 ‘여백’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중에서도 이런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내가 아닌 존재’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연성의 힘을 빌린다는 것,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의 힘을 믿는다는 것, 그런 점들을 받아들이면서 나의 상상력과 세계가 넓어집니다.
동질성은 때로 여백을 좁히고, 외부를 향한 공격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려고 할 때 ‘닫기’부터 생각하기 쉽지만, 여백을 ‘확장’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동질성으로 굳어지거나 같은 가치관을 가진 동료들끼리만 고립되어 있지 말고,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백은 확장됩니다.
완충지대로서 그리고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는 장소로서 여백의 가치를 다시 검토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석님께서 해주셨던 피드백과도 연결되면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로 일종의 방어를 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나와 타인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필요하지만, 서로가 편하게 ‘다닐’ 수 있는 여백을 마련해 두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올해 받기 시작한 심리상담을 통해서 제가 기질적으로 타인 수용이 유독 낮고, 사회적 보상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쉽게 말해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보다, 독립적 사고와 개인적인 가치를 확립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예요. 이건 제가 갖고 태어난 기질이기에 장점도 단점도 아니지만, 내가 일을 더 잘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사는 데에 장애물이 될 수는 있겠다 싶었어요.
12월 한 달 동안은 다가올 2025년, 제가 어떻게 하면 더 유연한 경계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보려 해요. 형석님이 건네주신 한 마디에서 빚어낸 다짐이라 감사하다는 말씀도 전하고 싶네요. 다음 편지에서 형석님은 어떤 연말을 보내고 계신지 들려주세요. 그럼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