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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기록 Aug 13. 2021

호텔리어가 될 뻔한 에디터

내가 에디터라는 꿈을 갖기까지

나는 서울의 4년제 대학에서 호텔관광경영을 전공했다. 사실 엄청난 포부를 갖고 학과를 택한 건 아니었다. 논술 전형은 모두 광탈하고 수능도 기대보다 못 봤는데, 재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내게 문득 어릴 적 다녀온 중국 여행에서 멋진 호텔 지배인을 만난 기억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열정보다는 '그래, 그런 직업이 있었지' 정도의 미지근함으로 입학한 대학. 1학년은 드디어 성인이 되었다는 기분과 많은 양의 술에 취해 보냈다. 2학년 때는 청춘사업으로 바빴고, 3학년이 돼서야 위기감이 고개를 들었다.


이제 나도 곧 취업을 해야 하는데, 한 게 없잖아?





다급하게 토익 학원을 끊고, 대외활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SNS는 인스타그램만 여행이나 일상 사진을 올리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부분의 서포터즈 활동은 블로그를 요구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블로거가 됐다. 다행히 일상들을 모아 포스팅하고, 누군가와 소통하는 일은 꽤 재밌었다.


그러나 난 여전히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주체적으로 나만의 길을 만들기보다는 다수가 좋다고 말하는 방향으로 뛰는 것이 익숙했고, 안 해봤던 일에 과감히 도전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낯선 경험을 하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호텔관광경영학과를 졸업해서 호텔리어가 되는 것, 그 예상 가능한 길 외에 다른 선택지는 고려해본 적도 없었던 내게도 이런 질문은 생겼다.



그 일을 하면 난 행복할까?


생각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뭘까? 그건 둘째 치고, 내가 좋아하는 건 뭐지? 난 취미가 있나? 잘하는 건?' 등으로 세포 분열이라도 하듯 불어났다.


저도 빨리 대학생이 되고 싶었던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이 있었더라고요. (중략) 그때는 20대가 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하면서도 그중에서 내가 잘하는 일을 찾고, 직업을 얻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 나를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그리고 그걸 아무런 걱정 없이 하고 있나? 전혀 아니었죠.

- 2018년에 작성한 내 블로그 글에서 발췌. 

 

2년 전의 내가 남긴 기록들


그 의문을 품은 이후, 내 삶은 격변기로 들어섰다. 담을 쌓고 살았던 책을 읽기 시작했고 관심 없었던 사진도 많이 찍게 됐다. 그때 내 기준 거금을 투자해 '나를 발견하는 5주간의 셀프 브랜딩 수업'을 듣기도 했다.


갑자기 인생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
너 아닌 것 같아. 이상해!


달라진 나를 보며 주변에서는 이런 말들을 했다. 자연스럽게 눈치를 많이 보게 됐고, 자신감도 없어졌다. 그러나 타인이 어떻게 평가할까 걱정돼서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포기해야 하나? 그 편이 더 별로라는 건 자명했다.



그래서 바깥의 소음 말고, 내 안의 목소리와 대화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직하게 가자 다짐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교집합에는 '감각적인', '글을 쓰는', '조합하는' 등의 단어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런 일을 하는 직업엔 무엇이 있을까? 디깅하다가 만난 것이 바로 에디터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또 3년.


그 3년간 내가 어떤 에디터가 되고 싶은 건지 끊임없이 탐구했다. 물론 초반엔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그러나 주변엔 커리어와 관련해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냥 직접 돌다리를 두드리며 나아갔다. 결실을 맺은 순간도 있었지만, 대차게 고꾸라진 날도 많았다. 


'이렇게 맨땅에 헤딩을 반복하다 내 머리가 수박처럼 두 동강 나면 어떡하지. 그냥 포기하면 편할 텐데…' 생각도 했다. 



그러나 꽃밭에서 또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과, 가시밭에서 단 하나의 나무로 자라는 것. 그중 나는 후자의 삶이 좋았다. 포기는 해도 괜찮지만,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른 후엔 단단한 굳은살이 생겼다. 수많은 가시를 직접 뽑아내고 마주한 땅 위에 나만의 작은 숲을 만들어가는 기쁨. 그 기쁨이 나를 계속 나아가게 했다.




이 공간에서는 그 이야기들을 낱낱이 소개해보려 한다. 내가 어떤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의 역량을 키웠고, 나라는 브랜드의 가치를 축적해왔는지. 존버와 발버둥, 성공과 실패, 시행착오와 결실이 혼재하는 나의 커리어 패스가 과거의 나처럼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들에게 튜브 하나는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울 걸 알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택한 이들이 힘과 용기를 얻는 그날까지, 최기록의 기록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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