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설교문
요즘은 AI로 설교 준비하는 것 때문에 말이 많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잘됐다고 본다. 목사 아니라도 아무나 AI에게 질문하면 좋은 설교문을 받아 볼 수 있다. 진짜 거짓말 아니라 프롬프트를 어떻게 입력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웬만한 목사들 보다는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현상을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설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으면 한다. 고작 설교 잘하는 것이 좋은 목사의 조건이 되는 시대가 끝이 나야 한다는 의미다
옛날이야 정보가 한정되어 있고, 좋은 설교를 듣는게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까 '하나님의 열심' 같은 책이 나오면 칭찬하고 추켜세웠겠지만 요즘은 프롬프트만 잘 입력하면 '하나님의 열심' 같은 설교문은 그냥 쏟아진다.
그리고 봐라. 설교 따위 아무리 잘해봐야 하나님의 열심에서 '하나님을 열심히 엿먹이는' 설교가 되는 경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새해 선물이랍시고 빅 엿을 연달아 먹는 바람에 체하겠다.
설교시간에 엉뚱한 정치 이야기나 하고 문맥에도 맞지 않는 사사오입 같은 해석을 할 바에, 차라리 AI를 이용해서 얻어 낸 설교문이나 차분하게 읽어주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하다고 본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점점 설교에 회의감을 느끼고 설교를 듣는 행위가 별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금상첨화겠다.
그렇게 설교 보다는 목사의 자질은 오직 열매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삶의 설교를 듣길 바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야만 교회가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설교 잘한다는 칭찬이 사라지고, 스타 목사도 사라지고 그렇게 겉만 번지르한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가 대형화 되는 것도 멈췄으면 좋겠다.
AI로 인해 그럴 듯한 좋은 설교문은 이젠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럴수록 그 설교문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세상이다. 이 현실을 자각해서 성도들이 저마다 '우리 동네 목사님'을 원하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우리 동네 목사님 /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전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군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뒷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정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