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종의 눈 같이

섬김

by 최희규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섬김'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이 말하는 참된 '섬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섬김’ 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바로 주차장에서 땀 흘려 안내를 하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고, 교사로 봉사하는 등 무언가 바쁘게 '활동'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내가 하나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가를 섬김의 척도로 삼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거나 특히,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허드렛일을 하면 "저분은 참 섬김의 본이 되신다" 라고 칭찬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쉴 새 없이 일하고, 봉사하고, 땀 흘리는 행위를 섬김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노동력이나 바쁜 일손이 필요해서 우리를 부르신 분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0장의 마르다와 마리아 사건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주방에서 땀 흘리며 바쁘게 일했습니다. 전형적인 '노동'으로서의 섬김이었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가만히 앉아 그분의 입술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땀 흘려 일한 마르다 대신, 가만히 주시한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물론 이 본문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을 섬김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내가 앞장서서 바쁘게 땀 흘리는 '행동'이 아니라, 내 주도권을 내려놓고 주인의 뜻을 살피는 '눈' 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저는 이 본문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맥락에서 오늘 본문인 시편 123편의 2절 말씀은 이 참된 섬김의 본질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시123: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그동안 바쁘게 일하는 것만이 섬김인 줄 알았다면, 이젠 그 짐을 내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종의 자세가 섬김이라는 개념을 갖는게 저는 참된 섬김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노동 자체가 섬김이 아니라, 주인의 손을 묵묵히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 자체가 섬김입니다. 만약 아무리 땀 흘려 최선을 다해도, 주인이 허락하지 않은 일을 내 고집대로 한다면 그것은 섬김이 아니라 '불순종'입니다.


저는 오케스트라의 비유를 통해 섬김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휘하시는 오케스트라에서는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독주가 가능하고 화려한 악기들만 하나님을 크게 섬길 자격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중앙의 피아노냐 구석의 북이냐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악기의 종류가 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화려한 기술로 피아노를 연주해도, 지휘자의 손을 바라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친다면 그것은 음악을 망치는 ‘소음’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다고 열심을 내어 봉사하고 대단한 일을 벌여도, 하나님의 지휘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반대로, 비록 심벌즈를 한 번 울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연주 내내 '지휘자의 손끝에 집중하고 대기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가 위대한 섬김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대기하며 '침묵'하고 있는 것이 섬김이라고 설교해도 사람들은 쉽게 수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그것이 섬김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몇 개의 상황을 제가 가져왔습니다.


민9: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막 위에 구름이 멈추면 진을 치고 가만히 머물렀습니다. 어떨 때는 일 년 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빨리 가나안에 들어가 땀 흘려 공로를 세우고 싶은데,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시니 기약 없이 텐트 안에서 침묵하며 대기해야만 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시간 낭비처럼 보였지만, 성경은 그 지루한 '대기 상태'를 가리켜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다(섬겼다)"고 기록합니다.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시력을 완전히 잃고 더 이상 글을 쓰는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다가 마침내 이런 위대한 고백을 남깁니다. "그저 서서 기다리는 자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이다."


이처럼 내가 가만히 있는 공백의 시간, 지휘자의 사인을 기다리며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침묵으로 대기하는 그 시간. 남들이 보기엔 아무것도 안 하는 낭비의 시간 같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 침묵과 기다림이 가장 철저하고 아름다운 '섬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침묵으로 지휘자를 주목하고 있을 때, 마침내 하나님께서 손을 들어 사인을 주십니다. 그때 내는 소리는 아주 사소해 보일지라도 거대한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요한복음 2장의 '가나의 혼인 잔치'를 떠올려 보십시오.


요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포도주가 떨어져 잔치가 멈출 위기에서 하인들이 한 일은 그저 지휘자이신 예수님의 입술과 손끝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기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이 지시하셨을 때, 그들은 물을 떠서 날랐습니다. 대단한 기적을 하인들이 행했습니까? 아닙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오케스트라 구석에서 그저 '북을 한 번 친 것'이나 다름없는 단순한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지휘자의 타이밍에 맞춘 그 단순한 순종을 통해 잔치는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은 기쁨을 누렸습니다. 물론 그 누구도 하인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지휘에 맞춘 그들의 북소리는 그저 하나님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처럼 섬김은 내 열심으로 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 속에서 주님의 손끝을 묵묵히 주목하다가, 주님이 "지금이다" 하실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세상을 살리는 위대한 섬김이 됩니다.


물론 그 때 나의 섬김은 사람드에게 비중이 없어 보이는 북치는 소리 한번일 수 있습니다. 별 것 아닌 냉수 한 그릇, 따뜻한 손길 한 번, 꾹 참는 인내와 오래참음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당신의 연주를 완성시킨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있어야 우리는 이 섬김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0: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사역이 바로 이와 같은 섬김의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본인 뜻대로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5: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에수님의 사역을 객관적으로 분석해보면 진짜 별 것 없습니다. 대형교회를 개척한 목사도 아닙니다. 당시 사회에서 존경받는 대제사장으로 인정된 것도 아닙니다. 정식으로 신학박사 학위가 있어서 교수가 된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그냥 젊은 사람 하나가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 한다고 사람들 모아서 가르치는 활동가 정도의 위치였습니다. 하지만 그 별 볼일 없는 사역이 위대한 섬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의 손끝을 주목하여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신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지휘를 보셨기에 죄인들과 식사하셨고, 병든 자들을 만지셨으며, 결국 십자가로 몰리면서 그는 자신의 삶을 "나는 섬기러 왔다" 라고 선포하신 겁니다. 그의 섬김은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 행위였던 겁니다.


그들의 행위와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김다고 외쳤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누가봐도 오케스트라 악단의 매인 피아니스트 혹은 바이올린 연주자 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지휘자이신 하나님의 손은 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방식이 최고인 줄 알고 거칠게 독주했습니다. 그 끔찍한 독주의 결과, 수많은 창녀와 세리들을 정죄하고 가난한 자들을 율법으로 옭아맸습니다. 그들의 독단적인 연주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운 화음을 산산조각 내는 지독한 '불협화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 교회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의 손을 주목하며 침묵으로 대기하는 섬김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저 나만의 뜨거운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겠다며, 세상 속에서 바리새인들처럼 끔찍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왜 교회를 비판합니까?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다면서 세상의 죄악을 향해 큰 소리로 정죄의 칼날을 휘두르지만, 세상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며 비웃습니다.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지 못한 채 남을 정죄하기에만 바쁜 위선을 꿰뚫어 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아는 교회의 모습을 교회 스스로 모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오늘 말씀에 의하면 자신의 마음대로 연주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중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섬김은 단순한 연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는 것에서 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잠잠히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며, 내 삶에서 침묵으로 주님을 섬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섬김과 열심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휘를 무시할 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도 불쾌할 정도로 나만의 실력을 뽑내는 악기 연주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섬김'이라는 미명 아래, 내 마음대로, 내 방식대로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보려는 모든 시도를 멈추어야 합니다. 앞뒤 가리지 않는 행동이나 내가 만들어낸 뜨거운 열심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손끝에 집중할 줄 아는 태도입니다.


내가 어떤 악기를 연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참된 섬김은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 하나님의 손에 주목하고 있는가? 내가 순종해야 할 그 한 순간을 위해 하나님께 예속되어 있는가 입니다.


거창하고 대단한 사역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억울한 순간에 솟구치는 분노를 꾹 참고 삼켜내는 것, 내 곁에 있는 지치고 약한 자에게 따뜻한 작은 친절을 베푸는 것, 그것이 바로 가나안 혼인잔치를 유지시키는 비결이며, 그것이 바로 냉수 한잔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내 열심의 독주를 멈추고 주님의 지휘에 맞춘 참된 섬김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때, 세상의 지탄을 받으며 불협화음을 내던 교회가 다시 아름답게 회복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인자가 온 것은 섬기려 함이라" 하셨던 예수님의 그 섬김이 우리를 통해 이 땅에서도 계속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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