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이고 우연적인 비현실
우리는 일상이 현실-현실-현실-현실-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아침밥먹고-학교가고-똥싸고-공부하고-똥싸고-저녁먹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감히 비현실이 끼어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머리털을 곤두세우고 겨털도 곤두세우고 주변 세상에 집중해 보면 일상에 널리 퍼져 있는 비현실을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순간.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잘못 빨아서 목 주변이 험준한 산세마냥 굽이진 흰 티를 입고 검정 가디건을 걸쳤다. 콘크리트 도로 위로 검정 세단과 회색 스타렉스, 흰색 경차가 지나갔다. 미세먼지로 더 이상 하늘색이 아닌 하늘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옆구리에 타이어 자국을 섬세하게 새긴 횡단보도 앞에 섰다. 고장 난 신호등은 어떤 의사표시도 하지 않았다. 언제 건널지 타이밍을 재고 있는데 맞은편에 노란 자전거를 탄 아주머니가 지나갔다. 아주머니라 하긴 했지만 사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밝은 갈색 파마 머리에 노란 슬라브 원피스를 입었다. 바람에 울렁이는 치맛단 근처에 노란 꽃잎이 날리는 것만 같았다. 노란 안경을 쓴 그녀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아닌가, 착각인가. 분명 윌리 웡카를 닮은 미소였는데. 그녀는 코너를 휙 돌아 사라졌다. 원래 살던-과자로 집을 짓고 엠마 스톤이 은하수에서 스텝을 밟고 러쉘이 도요새를 타고 달리는-동네로 돌아간 걸까. 나는 잠시 멍했다. 그녀는 흑백 사진 위에 떨어진 노란 물감 같았다. 모노톤의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컬러. 노란 색의 요정이 있다면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혹시 그녀를 본 건 나뿐인가 하는, 내 오감에 대한 의심이 들었다…
는 이야기.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한 삶의 ‘미적인 차원’과 퉁칠만 하지 않나. 인생 전반과의 개연성은 딱히 없지만, 사람을 매료시키는 우연의 순간이라는 점에서. 이런 순간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나랑 같이 아주머니를 본 사람이 있더라도 그에겐 아무 감흥이 없었을지 모른다. 또 언급한 대로 ‘우연’한 순간이라서, 원한다고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자주 발견할 수는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겨털까지 곤두세우지 않아도, 걸을 때 약간 멍한 느낌으로 두리번두리번 휘적휘적 하다가 평소와 다른 느낌, 분위기, 공기 같은 게 수족냉증인 이의 손처럼 서늘하게 느껴지면 가만 서서 그걸 느낀다. 약간의 공상까지 첨가하면 100점.
내 생각에 비현실의 순간은 많을수록 좋다. 비현실은 나를 상상에 빠뜨리고, 영감을 주고,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서게 한다. 마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비현실에서 현실로 돌아오면 일상이 약간은 가볍게 느껴진다. ‘세상은 노란 옷을 입은 윌리 웡카로 가득해’라는 병신 같은 생각을 하며 실재하는 것들을 보다 유쾌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즉, 비현실을 찾는 건 현실에 함몰된 나를 밖으로 끄집어 내는 시도다. 누군가 내게 진실한 순간에 글을 쓰라고 했다. 내게는 이 비현실적인 순간이 가장 진실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