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요구해 보자. 인간 봐가면서
나는 말을 흡수하는 성질이다. 상처 되는 말을 들으면 “뭐래어쩌라고”하고 튕겨내는 능력이 없다(온 몸에 유연함이란 없는 걸까). 성능 좋은 청소기처럼 후루룩 빨아들이면 왠지 모진 말이나 상처도 깨끗이 없던 게 되는 것 같아서 그래 버리고 만다. 사실 제일 큰 이유는 귀찮아서다. 사과를 받으려면 쟤가 나한테 뭘 잘못했는지 정리해서 조곤조곤 말해야지, 그러려면 용기도 좀 내야 하지, 만약에 듣는 놈이 아닌데? 아닌데? 이지랄 하면 말다툼도 좀 해야 하지… 어휴 그런 건 자기 할 일 다 하고도 에너지가 남아 도는 건강하고 활기찬 오로나민씨 같은 놈들이나 할 일이다. 나만 그냥 넘어가면 상대방 심기 안 건드리고 동네 안 시끄럽고 세상 평화로울 일이기 때문에 주로 닥치고 있는다.
근데 상처가 눈에만 안 보이지 아예 없는 게 아니라서, 없다 친다고 진짜 없어지는 게 아니다. 대신 속성을 바꿔 자기연민으로 승화한다. 자기연민이란 게 되게 찐따 같은 건데, 나한테 상처 준 사람은 가해자, 나는 피해자로 역할을 나누고, 스스로 불쌍한 나, 상처받은 나 하며 홀로 베갯잇을 적시는 짓거리다. 나는 그 속에서 점점 초라해지다가 가해자에게 변명할 기회-는 고사하고 지가 뭘 잘못했는지 알 기회-도 주지 않고 서서히 그 사람을 떠난다(당사자가 눈치 못 채게 서서히 멀어지는 게 포인트). 결국 자기연민의 끝은 인간관계의 요절이다. 상처는 하나의 인간관계를 파탄 내고도 모자라 이따금씩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내 호흡기관을 쿡쿡 쑤신다. 징한 것.
이 개 같은 ‘상처-참음-자기연민-관계단절-후유증’의 프로세스는 내게 하나의 습성처럼 자리잡았다. 근데 최근에 “나한테는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음 말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 미래를 예견했던 걸까, 그는 내게-인간이라면 필연적으로 가끔 하게 되는 정도의-실언을 했다. 그가 상처 받으면 제발 말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빌었던 게(※기억이 왜곡됐습니다) 떠오른 나는 장발장에게 선처를 하는 목사의 마음으로 위에 언급한 류의 귀찮음을 감수하고 ‘너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는 요지의 카톡을 보냈다. 삶을 영위한 스물 몇 해 동안 이런 의사표현을 한 건 처음이었다. 나도 참 에지간하구나.
답장이 없었다. 뭐여 시팔 하고 잤다. 다음날 아침에 ‘사과+원래 자신의 의도+애교와 미안함 사이 그 어딘가를 표현하는 이모티콘+앞으로 그러지 않겠다’의 조합으로 답장이 와 있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러자 상처 후 당연한 수순이던 자기연민이 들지 않았다. 그는 가해자가 아니고 나도 피해자가 아니었다. 스스로에 대해 불쌍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불순물처럼 몸 속을 떠돌던 상처의 잔재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관계를 그만 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와 나는 지금도 잘 지낸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안다. 사과는 해줄 만한 놈한테나 요구해야 한다는 거.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내 믿음은 확고함으로 지금도 굳이 미안한 줄 모르는 놈한테 사과하라고 하진 않는다. 나는 그럼 실수를 인정하고 꾸뻑 사과하는 타입인가? 아니 또 그렇진 않은데… 인간이 이렇게 모순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