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요람은 심연 위에서 흔들거린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건대, 우리는 단지 영원이라는 두 어둠 사이 잠시 갈라진 틈으로 새어나오는 빛과 같은 존재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p.61
생애 말기에 알츠하이머 증후군 같은 질병으로 발현하면 그토록 처참한 결과를 낳는 유전자들이, 사실은 생애 초기에 그토록 유용한 기능을 수행했던 유전자들과 같은 종류인 듯하다. p.63
푸른 도화선 속 꽃을 몰아가는 힘이
푸른 내 나이 몰아간다, 나무뿌리 뒤흔드는 힘이
나의 파괴자다. p.64
10대 소년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가만히 있는 것을 부득불 망가뜨릴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p.79
'나는 내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상에 아기들이 태어난 목적을 잊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기들은 우리를 대체하려고 왔다. 아기들은 귀엽고, 안아주고 싶고, 달콤하고, 우리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존재들이다.' p.173
그는 참으로 많은 환자들이 자신은 요통 환자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정체성을 형성해버린다고 강조했다. 그럼으로써 환자가 아닌 삶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헤링 박사에 따르면 세계무역센터 자살 테러범들도 그런 '프로 환자'들과 비슷하다. 자신의 고통과 피해의식에 대한 도취만이 자기 존재에 질서와 의미를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p.176
뭔가를 필요로 하는 것에서 비롯된 이런 모욕적이고, 진지하고, 적나라한 기분이 나는 좋다. 아무리 반복 학습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실은, 우리는 아주 잠깐 지구 위를 걷는 동물일 뿐이고, 언젠가 사라질 껍질에 둘러싸인 벌거벗은 육신일 뿐이라는 것이다. p.181
우리는 모두 살아 있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우리에게는 물에 잠겨 나아갈 때 수면에 어른대는 자기 그림자를 흘끗 보는 것 이상의 대단한 목표가 없다. 떠 있는 것의 목적은 뭘까? 계속 떠 있는 것이다. 나는 더없이 근사한 무중력 존재의 본질을 즐긴다. p.186
몸은 모든 면에서 숙주와 같고, 생식계는 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기생충이다. p.187
불변의 생물학 법칙은 사실 단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 새끼를 낳고, 죽어라. p.194
중력은 밥맛이다. p.210
우리가 여기에 있는 까닭은 운석이 지구를 덮쳐서 공룡을 멸종시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차원적인" 대답을 갈구하지만, 사실 그런 답은 없다. - 스티븐 제이 굴드 p.223
'나는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너무나도 늦게 삶은 살기 위한 것임을 발견했다.'
'인생은 세 가지 사건이 전부이다. 태어나고, 살고, 죽는 것. 우리는 태어나는 것은 스스로 알지 못하고, 죽을 때는 고통 속에 떠나고, 사는 것은 잊어버린다.' p.226
한편 우디 앨런은 말했다. '나는 작품을 통해서 불멸을 얻기는 싫다. 나는 죽지 않음으로써 불멸을 얻고 싶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기는 싫다. 나는 내 아파트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p.245
채널 2번에서 99번까지, 우리는 찾아보았지만, 언젠가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에 대한 구제책은 발견하지 못했다. p.257
9세 때 나는 잠에서 깨어, 몸을 떨면서, 지하실 내 방의 층계참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언젠가 내가 존재하기를 멈춘다는 사실을 이해하려 애쓰며, 밤새도록 깨어 있었다. 기억하기로 나는 옆집 사람의 문신을 본 뒤에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버렸다. 해골 아래에 '너도 언젠가 이렇게 된다'고 적힌 문신이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렇게 썼다. '목숨이 유한하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나는 죽음이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15세의 내 자아는 세상이 평화롭고 내 행복이 튼튼할 때에도 언젠가 정해진 날에 덮쳐올 철저한 비존재 상태, 나의 철저한 비존재 상태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러한 사멸을 생각하면 너무나 두려워서 초연하게 맞선다는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용기"라고 부르는 것은 뭘 모르는 멍청한 소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p.259
사람의 비운은 이런 것이다. 모든 것을 알아낼 시간이 75년밖에 없다는 것. 그 모든 책과 세월과 아이들을 뒤에 남긴 연후보다 차라리 어릴 때에 본능적으로 더 많이 안다는 것. - 배리 한나 p.263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점차 관심의 대상이 되어 다른 대상들의 자리를 삼켜버린다. 아주아주 나이 들고 병든 사람의 세상은 자기 몸에서 반경 60센티미터 안의 원으로 좁혀진다. 무엇을 먹었고, 배출에 어떤 문제가 있고, 통증의 진행 정도는 어떻고, 의자나 침대가 편하네 편하지 않네 하는 내용이 생각과 말의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p.281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 당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도, 물론,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는 각자 10개에서 12개쯤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어쩌면 치명적인 돌연변이일지도 몰라요. 우리는 그 돌연변이들을 아이에게 전달하지요. 아버지는 제게, 저는 내털리에게. 유전자가 불변하는 대신 우리는 늙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아버지는 이 사실에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느끼죠. 저는 그 사실에 짜릿하고 속이 시원해요.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에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p.312
나는 동물들이 싸우는 걸 많이 봤습니다. 동물들은 아무리 세가 불리해도 끝까지 싸웁디다. 결국 질 것이 뻔한데도 살아보려고 죽을 때까지 아등바등합니다. 사람도 무슨 대단한 목적 때문에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살아 있으려는 본능일 뿐이지. 하기야 뭐, 나는 그쪽에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p.313
'우리 인생은 물 위로 잠깐 머리를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가라앉는 것이다. (...) 그러니까 수선 피우지 말고 그냥 번식하면 된다. 종을 유지하면 된다.' p.314
여기까지 읽어내려오셨다면 이 책이 하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크게 감화하신 분일 가능성이 높을 텐데요. 그런 분이라면 저와 비슷한 궁금증을 갖고 계실 듯해 여쭙고 싶습니다.
이 책이 300쪽 넘게 주창하는 것은 자연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에게 바라는 유일한 점은 '새끼를 낳고 죽는 것'이라는 사실인데요. 그런데 인간은 왜 그렇게 어디서든 의미를 찾으려 할까요? 인간은 의미에 대한 욕망을 거의 본능처럼 갖고 있습니다. 풀떼기가 세 잎인가 네 잎인가에서도 의미를 찾으려하지 않습니까.
새끼를 낳고 죽는 것에 있어서 '의미를 찾는 본능'은 필요가 없을 텐데요.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고요. 이 질문을 제 동생에게 하니 "진화의 잉여"라고 하더군요. 너무 발달해서 잉여가 생긴 거죠. 하지만 잉여라기엔 인간이 의미에 너무 집착하는 것도 같습니다. 인간은 한 평생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까.
오직 새끼를 낳고 죽는 것을 위해서만 프로그래밍 되어 있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심플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브런치에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고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