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깔짝깔짝

봉준호의 아이들_<옥자>

<괴물> <설국열차> <옥자>까지, 살아남은 아이들

by 빵떡씨

*스포 잇음니다

<옥자> 상영관이 별로 없어서 넷플릭스로 봤다. 한 달 무료니까 한 달 후에 바로 끊어야지. 넷플릭스의 어마어마한 투자 덕에 근래 한국 영화 중 가장 성대한 마케팅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하도 여기저기서 옥자, 옥자 해대는 통에 <옥자>를 보지 않으면 문화 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아 보게 됐다.

<옥자>는 미자가 친구 옥자를 찾아 떠나는 판타지 어드벤쳐다. 미국기업 '미란도'는 유전자를 조작해 슈퍼돼지를 만든다. 유전자 조작을 숨기기 위한 쇼로 슈퍼돼지를 각국으로 보내고, 10년 후 누가누가 잘 키웠나 겨루는 장성한 돼지 콘테스트 같은 걸 한다. 그 와중에 미자가 키운 옥자가 베스트 슈퍼돼지로 선정되어 미국으로 팔려간다. 미자는 옥자를 찾으러 떠난다.

movie_imageT2F5I36K.jpg 출처: 네이버 영화 <옥자>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옥자가 나오는 데도 아니고 미자가 나오는 데도 아니고 최우식이 나오는 장면이다. 최우식은 옥자를 화물차에 실어 운반하는 미란도의 비정규직 역으로, 영화 통틀어 3분 정도 나온다. 화물차는 운반 중에 동물보호단체 ALF의 습격을 받아 옥자를 빼앗긴다. 빨리 쫓아가자는 윤제문(미란도 정규직 역)에게 최우식은 "몰라 씨발, 나랑 뭔 상관이야" "제가요, 1종 면허는 있는데 4대 보험이 없거든요"라고 한다. 슈퍼돼지 도난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들 앞에서도 "mirando completely fucked"라고 한다.
"미란도 직원 아니신가요?"
"맞는데 상관 없어요. 내가 아니라 쟤들이 좆된 거니까요"
비정규직 제도의 맹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부조리를 위트로 승화시키는 건 봉준호의 대표 장기다. 사실 그런 걸 떠나서 최우식의 "데이 퍽드업"이 너무 발랄해서 좋아하는 장면이다.

봉준호는 판타지를 통해서도 부조리를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괴물>, <설국열차>, <옥자>가 그렇다. <괴물>에선 미군이 한강으로 흘려보낸 독성물질(부조리) 때문에 돌연변이 괴물(판타지)이 태어난다. <설국열차>에서 빙하기인 지구를 쉬지 않고 도는 열차(판타지)는 머리칸 꼬리칸으로 나뉘어 있어, 계층이 존재하는 사회(부조리)를 암시한다. <옥자>의 슈퍼돼지 옥자(판타지)는 유전자 조작(부조리)으로 태어났다. 세 영화의 소재인 판타지적 요소는 부조리에 의해 탄생하거나 부조리가 있어야만 존속이 가능하다. 즉 괴물, 열차, 옥자는 사회 모순이 시각화된 것이다.

movie_image1NDHZK31.jpg 출처: 네이버 영화 <설국열차>

부조리를 다루는 영화가 결말을 맺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우리가 노력해서 문제가 두루 잘 해결 됐다. 둘째, 노력했지만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셋째, 결말이 어떻게 됐는지 아무도 모른다. 세 결말은 모두 맹점이 있어 무엇을 택하든 비판을 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봉준호는 해피하지도 배드하지도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은 새로운 유형의 결말을 내곤한다. <괴물>에선 괴물은 죽지만 환경오염이 계속되는 이상 언제든 또 다른 괴물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둔다. <설국열차>에선 불합리한 계층사회를 만든 윌포드는 죽지만 열차가 통째로 폭발하면서, 즉 사회 모순뿐 아니라 사회 자체가 사라지면서 인간은 태초처럼 빙하기에 맨몸으로 남겨진다. <옥자>에선 옥자는 구출되지만 '악'을 대표하는 미란도는 건재하고 그에 따라 수많은 슈퍼돼지들이 계속 희생되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movie_image9XUUTXC9.jpg 출처: 네이버 영화 <괴물>

비비크림까지는 생얼인가 아닌가처럼 존나 애매한 결말들에서 한 가지 확실한 건, 봉준호는 항상 아이들을 남겨 놓는다는 것이다. <괴물>에선 고아성이 끌어안고 있던 남자애가 구출된다. <설국열차>에선 윌포드에게 착취당하던 아이와 고아성이 살아남는다. <옥자>에선 옥자가 탈출할 때 새끼 슈퍼돼지를 입에 담아서 나온다. 아이들은 가능성이다. 이 모순을 당장 끝낼 수는 없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다. 그리고 봉준호는 그 가능성을 희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우린 이미 틀렸으니 늬들이 잘 좀 해봐'라는 책임전가의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가능성이야말로 지금의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말이라 생각한다.


+ 넷플릭스에서 사진 캡쳐해서 중간중간 넣으려고 했는데 왠지 저작권에 걸려서 넷플릭스가 우가우가 쳐들어올 거 같아서 그냥 네이버 영화 사진 썼다. 잘... 한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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