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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떡씨 Apr 16. 2023

엔뿌삐

회사에서 내 옆자리엔 엔뿌삐가 앉는다. 엔뿌삐는 더할 나위 없이 엔뿌삐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엔뿌삐다. 엔뿌삐는 일단 말하는 걸 좋아한다. 떠들게 놔두면 종일도 떠들 것 같다. 별 호응이 없어도 잘 떠든다. 호응을 해주면 더 잘 떠든다. 말을 열심히 하다가도 "...귀찮아서 못 말하겠어.." 하는 나로서는 진기명기 같다. 엔뿌삐는 사람을 좋아한다. 누구에게라도 말을 걸고 싶어 한다. 그게 설사 ISTJ인 나일지라도. 옆에서 시선이 느껴져 하는 수 없이 끼릭끼릭 고개를 돌려 쳐다보면 엔뿌삐가 할 말 보따리를 양 볼에 두둑이 붙이고 빙글빙글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그럴 땐 정말 "무슨 일이에요?"라고 묻기 싫지만 원만한 사회 생활을 위해 물어본다.

"무슨 일이에요?"

엔뿌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불거리기 시작한다. 3분 정도 경과하면 내 고개가 좌측으로 10도 정도 떨어진다. 그럼 엔뿌삐는 내 팔에 매달려 앙탈을 부린다.

"빵떡씨 내 말 듣고 있어요~? 또 안 듣고 있죠~? 아 진짜 웃긴 사람이야~~"

말을 안 듣는데 뭐가 웃기다는 걸까. 확실히 남의 장점을 잘 찾아내는 사람이다. 장점이 아닌데 장점으로 착각하는 걸까. 아무튼. 엔뿌삐는 처음 본 사람과도 말을 잘한다. 처음 볼수록 더 신나서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6개월 동안 세 마디 정도 한 개발자를 붙잡고 한참 얘기하더니 중고 에어프라이기 거래 약속까지 잡고 왔다. 재능이다.


나는 일하면서 점심을 먹을 때가 많다. 내가 과자를 뜯고 있으면 엔뿌삐가 저 멀리서부터 벌써 할 말 많은 표정으로 쫓아온다.

"빵떡씨~ 위에 구멍 나려고 그래? 어쩌려고 그래? 내 냉동 닭가슴살 핫도그 줄게. 내가 진~짜 아끼는 건데 빵떡씨니까 준다. 나는 맛도 못 봤는데 진짜~..."

소극적으로 "아ㄴ... 괜찮...."하며 보일듯 말듯 손사레를 살랑살랑 치다 보면 어느새 핫도그를 입에 물고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안 맞지만 왜인지 엔뿌삐는 우리가 환상의 짝꿍이라고 생각한다. 엔뿌삐가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예컨대 이런 순간이다. 나는 엔뿌삐가 입에 물려준 핫도그를 먹고 있었고 엔뿌삐는 컵라면에 물을 부어 놨다.

"히이이이이이ㅣㅣㅣㅣ익ㄱㄱㄱㄱ"

"...?"

"젓가락!! 젓가락이 없어요!!! 큰 일 났다!! 컵라면에 물 부었는데 젓가락이 없쒀요오!!!!"

"진정해 내 자리에 있으니까 갖다 줄게요."

"하아아아ㅏㅏㅏㅏ악ㄱㄱㄱ"

"아니... 진정하라고.."

이렇게 본인이 허둥지둥할 때 내가 차분히 다스려주기 때문에 찰떡 궁합이라는 것이다. ... 왜 내 입장은 생각 안 해...?


엔뿌삐의 하이 텐션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직장인들은 차분한(척하면서 온갖 븅신 같은 망상을 품고 있는) 상태가 디폴트인데 엔뿌삐는 그런 상태를 참을 수 없기 때문에 온갖 어릿광대 같은 짓으로 텐션을 올린다. 그럼 진중한(척하면서 '밥!! 똥!!! 잠!!!' 같은 생각을 하는) 팀원들도 슬금슬금 긴장을 푼다. 덕분에 회의가 좀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고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쁜 것 같진 않기도 하고 좀 덜 삭막한 것 같기도 하고... 뭐 그런 착각이 든다. 엔뿌삐는 사실 여리고 눈치도 많이 본다. 그럼에도 늘 뭔 짓거리를 하고 싶어서 사람들 표정을 슥 살피는데, 이제 그 제스쳐만 봐도 웃기다. '저 엔뿌삐가 또 뭔 짓거리를 하려고..' 하는 생각에 콧구멍이 벌름거린다.


늘 틱틱거리는 사람에게는 말하기 전에 긴장되는 것처럼, 늘 활기찬 사람에게는 말하기 전부터 기분이 좋다. 엔뿌삐는 그런 예측 가능한 안정감을 준다. 그건 정말 큰 장점이다. 물론 말을 한 번 시키면 날이 가고 달이 가게 떠들어서 문제지만... 나처럼 뒷걸음질 치는 사람만 있다면 사람들은 가까워지지 못하고 팽창하는 우주의 별처럼 슬금슬금 멀어지기만 할 것이다. 누군가는 빙글빙글 웃으며 할 말 많은 얼굴로 다가와야 서로 만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다가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인 나는 엔뿌삐 같은 사람이 있어 고맙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잘 맞는다는 뜻은 아니다. 엔뿌삐와는 느슨하게, 10년 입은 빤쓰 고무줄처럼 최대한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는 상태가 최적이다. 늘 응원해 엔뿌삐! 멀리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멀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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