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 가면 나의 약점이 뭔지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미용사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하고 물으면 분명 나름대로 기획이 있었음에도 아무 생각도 안 한 사람처럼 "음... 어..." 하게 된다. 힘겹게 입을 떼도 마스크 밖으로는 웅얼웅얼하는 소리만 나가기 때문에 미용사는 내 말을 알아 듣기 위해 몇 번이나 "네? 네?!" 하고 물어야 한다. 그럼 나는 더 주눅이 들어 전보다 더 웅앵웅거린다. 선명한 딕션으로 말하는 것은 분명 큰 재능이다.
나는 곤란함을 피하기 위해 늘 가던 미용실의 늘 같은 미용사에게 머리를 맡긴다. 그럼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미용사가 "저번처럼 잘라드릴게요"라고 한다. 그럼 나는 그저 끄덕, 하면 된다. 하지만 종종 "뒷머리를 좀 더 짧게 치면 예쁠 것 같은데, 어떠세요?" 같은 기출변형 문제에 당면하기도 한다. 나는 짧다고 하면 얼마나 짧은 걸까 지금 뒷머리 길이는 어느 정도일까 나는 제비추리가 뜨는 편인데 그걸 말해드려야 할까 이미 알고 계실까 그냥 똑같이 잘라달라고 할까 그럼 좀 실망하시려나... 같은 생각을 한다. 물론 겉으로는 "음... 흐음..." 정도로 표출될 뿐이다. 오랜 시간 나를 봐온 미용사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다가 "그냥 알아서 예쁘게 해드릴게요~" 한다. 그럼 나는 냉큼 끄덕, 한 후 안심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내 지인 중에는 아주 세세한 부분에 있어서까지 명확히 원하는 바가 있고, 그것을 야물딱지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미용실에서도 앞머리 눈썹이랑 눈 사이로 잘라주시는데 눈에 살짝 더 가깝게 해주시고 양끝은 길게 빼주세요, 서브웨이에서도 할라피뇨 빼고 에그 한 스콥 추가하고 콜라랑 쿠키도 주세요 콜라는 제로콜라로요, 스타벅스에서도 라떼 락토프리 우유로 바꿔주시고 너무 뜨겁지 않고 연하게 해주세요 아 헤이즐넛 시럽 한 펌프도 추가요, 라고 또박또박 말하는데, 가사 전달력이 뛰어나고 리드미컬하기까지 해 오디션이었다면 저희와 함께 갑시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는 옆에서 은 세공사의 기술을 보듯 넋 놓고 구경하다가 내 차례가 오면 "어... 저도 쟤랑 똑같이요"라고 말한다. 그 짧은 한 마디 하는 것도 머쓱해 목을 북북 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