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 먹어 치우는 이야기
할머니 이야기1. 우리 할머니는 종종 도토리묵을 쑨다. 이 안 좋은 노인이 먹기에 묵만한 게 없다. 식사 때가 되면 묵을 숭덩숭덩 잘라 접시에 담고 간장을 뿌린다. 그리고 당신 앞에 두고 오물오물 잡수신다. 근데 먹다가 배가 부르면 나한테 묵 그릇을 디밀고 "먹고 치워라"한다. 그럼 나는 먹긴 먹으면서도 그다지 유쾌하지가 않다. 내 위장은 딱 만족스러울 만큼 채워진 상태인데 묵을 먹음으로써 나의 기분 좋은 포만감이 더부룩함이 되기 때문이다. '평소엔 치킨 한 마리씩 뜯어 처먹으면서 묵 몇 조각에 더부룩하다고 하냐'면 좀 머쓱하지만 아무튼 기분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할머니가 떠다 민 묵에 손도 안 댈 때가 있다. 그럼 할머니는 묵 그릇을 다시 쓱 가져가 남은 묵을 묵묵히 먹는다(라임 오졌고). 왠지 '조년이 지 생각 해서 줬더니 먹지도 않고'라는 시위 같다. 이런 일은 묵뿐 아니라 버섯 볶음 여덟 개, 가지 무침 다섯 개, 감자 조림 여섯 개 등 다시 냉장고에 들어 가기 애매하게 남은 모든 반찬들에 해당된다.
할머니 이야기2. 나는 매일 아침 설거지랑 청소를 한다. 보통 설거지를 하고 바로 청소를 하는데, 가끔 깜빡 잠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나는 백수라 시간도 많으니 자고 일어나서 청소를 해야지 생각한다. 근데 자고 있으면 거실에서 므위우우우웅우우우웅뮈우우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린다. 굉음은 점점 가까워지다 결국 내 방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할머니가 고새를 못 참고 청소기를 돌린 것이다. 그 윙윙 대는 소리가 마치, 동네 사람들 여기 팔십 넘은 할머니가 청소를 하는데 손녀란 년이 퍼 자고 있네요 껄껄 늙으면 죽어야지, 하는 것 같아 안 일어날 수가 없다. 한 번은 꿈에 버스커버스커가 나와서 노래를 했다. 곧 하이라이트인 '훠어어어ㅓㅓ'가 나올 부분이었는데 갑자기 '므위이이이이이잉'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정신 차려 보니 청소기 소리가 꿈 속까지 들린 것이었다. 나는 쿵쾅거리며 할머니한테 갔다. 대놓고 대들진 못하고 씩씩대는 숨소리와 청소기를 역동적으로 잡아 채는 모션으로 '할머니 때문에 잠 깨서 엄청 짜증난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물론 할머니는 그러거나말거나 하는 눈치였다.
할머니 이야기3. 할머니는 7시에 아침을 먹고 몇 가지 집안일을 한다. 오전 10시 반까지는 거실에서 아침 드라마를 본다(10시 반엔 노인정에 간다). 나도 느즈막이 일어나서 할머니 옆에 앉아 잠이 덜 깬 느낌을 즐긴다. 물론 이건 절대적으로 잘못된 행동이다. 오전 10시는 할머니의 말문이 트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할머니는 나나 동생을 붙들고 얘기 하길 좋아한다. 큰아빠네 얘기, 고모네 얘기, 전쟁 때 이모할머니랑 피난 내려 온 얘기, 101동 할머니가 고스톱으로 노인정 평정한 얘기 등등 반 세기의 시간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당신 하고 싶은 얘기만 하신다. 그럼 나는 할머니와 티비 중간 정도에 시선을 고정하고 가끔 고개를 끄덕이면서 얘기의 8할은 흘려버리면서 가시거리에 걸리는 티비를 보는 데 집중한다.
어제도 여느 때처럼 할머니 말을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수순대로 큰아빠 이야기를 거쳐 고모, 이모할머니, 노인정 얘기를 했다. 그리고 아빠 얘기를 했다.
"서울 살 때 느 아빠가 대구서 올라오면 나를 이르케 꽉 안음서 어머니 오래 사셔야 해요, 오래 사셔야 해요 그랬다. 그러면 내가 아이구 내가 오래 살아 뭐하냐 했지. 그게 저 무어냐 벌써 한 이십 년 전인데 내가 입때껏 안 죽고 살아있어. 그래서 인저는(이제는) 느이 아빠가 밸 것두 아닌 걸루 괌(고함)을 치구 내가 어제도 참외를 그걸 좀 상한 걸 먹어두 괜찮다구 한 걸 갖구 썩은 걸 먹으면 되냐고 너들도 보는데 그래 야단을 하고 인저 내가 나이가 구십이 다 돼 가는데 뭐가 좀 맘에 안 들어두 그저 맘 속으로 어머니는 왜 저러시나 하고 가만가만 말하믄 될 걸 그래 야단을 하구... (울먹)이 집에 나만 없으면 다 하하호호 잘 살 텐데. 내가 느 어무니 아부지한테 딴 불만은 없어이 요즘 세상에 이래 부모를 잘 모시는 사람이 없어. 근데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하이구 내가 죽는 날까지 애비가 그래 큰 소리를 내면 내가 어쩌케 살지를 모르갔고 허이구..."
할머니는 오래된 장롱 같다. 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하지 않아도 당연히 잘 있는 장롱처럼, 신경쓰지 않아도 아침 먹고 빨래 하고 드라마 보고 노인정 가고 교회 가는 등등의 일을 자연스럽게 하곤한다. 그럼 나는 오래된 장롱에게 기분이나 생각을 묻지 않는 것처럼 할머니에게도 기분이나 생각을 묻지 않는다. 안녕히주무셨어요, 진지드세요, 다녀왔습니다 같은 기능적인 말이나 했지 말을 위한 말은 한 적이 없다. 용돈이나 간식 같은 건 엄마 아빠가 살뜰히 챙겨드리지만, 여느 사람이 그런 것만으론 마음이 충족되지 않듯 할머니도 그랬다. 할머니는 오래되긴 했지만 장롱이 아니다. 말다운 말을 걸어주고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할머니는 그 말을, 건성으로라도 듣고 앉아 있는 나에게 몰아서 하는 모양이었다. 적적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