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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깔짝깔짝

인싸 할까 아싸 할까

난 뚤따

by 빵떡씨

가지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막 엄청 좋아하지는 않는데 종종 땡길 때가 있다. 컵라면, 스윙칩, 트로피카나 이런 거 계속 먹다 보면 가끔 생각난다. 가지랑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게 있는데, 교양 책이 그렇다. 자주 읽진 않지만 오래 안 읽으면 왠지 한 번 봐야 할 것 같다. 며칠 전에도 뇌에 유기농 야채를 먹이는 기분으로 예술사 책을 읽었다. 회전목마를 탈 때처럼 주로 지루하고 가끔 재미 있었다.


대충 씹어 삼키며 읽고 있는데 문득 갸웃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분야든 역사는 이 지점에서 저 지점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했다. 근데 읽다 보니 예술은 그렇지가 않았다. 지루하겠지만 살짝 설명자면, 예술의 역사는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근대, 현대로 뭉텅뭉텅 나눠진다. 그리스 로마에선 이상적인 미를 추구했다. 완벽한 아름다움이 있고 거기에 가까울 수록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르네상스의 바로크, 로코코 미술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절대적인 미의 기준에 반기를 들며 나타났다. 이 때의 예술가들은 아름다움은 머리로 계산할 때가 아니라 감정과 주관에 따를 때 탄생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회복하자는 신고전주의가 등장했다. 비슷한 시기에 낭만주의가 등장했는데, 이름에서 감이 딱 오듯 주관적이고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사조였다. 신고전주의와는 정반대로 볼 수 있다.

근대 후기에 들어서면 사실주의가 대두한다. 그래 지금 생각하는 그거, 일상적인 소재를 사실적으로 그리자는 주의 맞다. 동시대에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활동했는데, 사실보다 순간에 받은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책을 덮었다. 이 정도면 미술사란 전에 누가 하던 건 죽어라 하기 싫어하는 역사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다빈치, 고흐, 세잔, 모네, 마네 다 모아 놓으면 서로 머리채라도 잡을 각이다. 미술사를 선으로 그린다면 쭉 뻗는 직선이 아니라 분명 지그재그일 거다. 이쪽과 저쪽이 끝없이 핑퐁 하는 모양. 예술은 원래 이런 식으로 발전하는 걸까. 핑퐁핑퐁핑퐁핑퐁 하다 기어코 알 껍데기에 금을 내 깨고 나오는. 문득 콘텐츠의 흐름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소한 트렌드만 해도, 인싸, 인싸행, 인싸각, 인싸템 인싸를 똥싸듯 부르짖다가 돌연 '꼭 인싸여야 하나요?' 같은 글이 올라오는 걸 보면 정말 그렇다.

큰 흐름도 그렇다. 내가 고등학생일 땐 거의 모든 콘텐츠들이 파이팅 넘치는 분위기였다. 미래를 향해! 미쳐야 미친다!! 으아 열정 최고!!! 하는 느낌. 근데 대학생이 되니까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일보다 소중한 오늘! 미치지 않고 살면 안 되나요? 으아 욜로 최고!! 요즘은, 욜로 하다 골로 간다, 열심히 사는 게 죄인가요? 욜로 하고 싶어도 못하는 청춘. 같은 글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혼란하기가 춘추전국시대 뺨아리 후려칠 수준.

결국 답이 없기 때문 아닐까. 오늘은 24시간이고 시간은 거리를 속력으로 나눈 것이고 빛의 속력은 2.997×1010 cm/sec이고... 는 정해져 있지만 오늘이 내일보다 중요한지 내일이 오늘보다 중요한지 같은 건 답이 없다. 그래서 어떤 주장이든 진지하게 조곤조곤 얘기하다 보면 그럴싸하게 들린다. 여기서 옳고 그름을 따지기 시작하면 한없이 아득해질 뿐이다. 아무래도 이런 류는 무엇이 맞느냐의 문제이기보다 무엇을 취하느냐의 문제 아닐까. 인싸여도 되고 아싸여도 되고 오늘을 살아도 되고 내일을 살아도 되는, 고르기 나름인 프레임들. 그 중에 무엇을 내 것으로 할지는 스스로와 상의해 보는 편이 가장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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