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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효석 Sep 12. 2017

D-7_ 중국

D-7


 중국인 카페 여직원이 발로 툭툭 치는 바람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나름 편안하게 침낭을 깔고 쪽잠을 자던 나는 그녀의 알아듣지 못할 큰 소리에 그냥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이내 짐을 챙겨서 어제는 없었던 옆 의자의 빈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아직은 초보 여행자인 나에게 첫 노숙은 지금의 내 모습만큼이나 미숙했다. 잘 곳이 없어 기차역 안에 있는 카페테리아의 야외 테이블 아래에 침낭을 두고 억지로 잠을 청했지만 서너시간만에 이 부지런한 여직원은 가게 문을 열어야 할 시간이라면서 나를 내쫓았다.


 고개를 들었더니 어제 밤 북경역을 가득 채웠던 나와 같은 노숙인들 무리는 거의 없어지고 일사분란하게 새벽기차를 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여행객들의 줄이 눈앞에 나타났다. 서두르지 않으면 또 어리버리하게 사고 칠 것 같아 나는 부리나케 침낭을 챙겨서 화장실로 향했다. 불과 보름전만 해도 나는 강남의 아늑한 자취방에서 발 뻗고 놀며 지내던 한량이었지만 이렇게 빨리 여행자의 모습으로 적응하게 될 줄은 나조차도 기대 못했다. 전문가처럼 능숙하게 역에서 첫 노숙을 한 나는 이어 기차역 화장실에서도 마치 여러 번 한 것 같은 능숙함으로 머리를 감고 세면을 했다. 군대 생활을 오래 했던 것이 도움이 되어서였을까?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기차시간이 남아 로션과 선크림을 바르는 여유도 가졌다.


 그 큰 북경역 내부를 헤메다가 누가 봐도 내가 타야할 기차의 승강장으로 보이는 플랫폼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줄과는 다르게 금발머리의 외국인들이 유독 많이 보이는 줄이었다. 나는 내 앞에 줄 선 서양인에게 이것이 모스크바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냐고 물어보았더니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그 남성은 맞다고 짧게 대답하고 다시 뒤돌아섰다. 


 꿔다놓은 보리자루처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몰랐던 초보 여행자인 나는 일단 주변을 살펴보았다. 여기는 중국의 수도 북경 한복판에 있는 북경역이다. 나는 일주일전 세계일주라는 거창한 꿈을 품고 이곳에 도착하여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목적지인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첫 여행지인 이곳 중국 북경에서 일주일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 목적지인 모스크바로 향하기 위해 이 곳으로 왔다. 


 나 역시 세계에서 가장 긴, 무려 일 주일을 기차에서 보내야 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로인 시베리아 횡단열차(TSR; Trans Siberian Railway)를 선택한 이유는 여행자로서의 로망이 가장 컸다. 실용면에서 이 기차는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비행기로는 하루면 가는 거리를 무려 일주일이나 걸려서 가기 때문이다. 이미 서른이 넘어 가는 여행이니만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생에 두 번 탈 기회가 있겠냐고 자문하여 눈 딱 감고 결심했다. 물론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다. 가난한 여행자였던 나에게 몇 십 만원이라도 저렴한 기차표는 아쉬운 존재였다. 어차피 시간 외에는 잃을 것도 없는 상황의 호기로운 청년 백수였던 나는 호기롭게 이 여행을 결심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저 멀리서 기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한 대 들어오고 있었다. 다른 열차들과 비교되는, 누가 봐도 특별해 보이는 녹색 기차가 위용을 뽐내며 진입하고 있었다. 내내 중국어만 보다가 러시아어로 쓰인 표지를 보니 무언가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 다른 회색 열차들 사이에서 진한 녹색의 유럽식 열차를 보니 위엄마저 느껴졌다. 승객들은 줄서서 열차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간단한 검표를 마친 뒤 바로 객실로 들어갔다.

 객실은 기대 이하로 낡았다. 초등학교 양호실에서나 봤을법한 하얀색 커버가 낡디 낡은 침대를 감싸고 있었고 벽에 매달려 있는 이층 침대는 위험해보이기까지 했다. 네 명이서 쓰는 객실에서 나는 우측 2층 칸을 쓰게 되어 있어서 일단 위로 올라가 주섬주섬 짐을 풀었다. 복도에는 자기 객실을 찾아 이동하는 무리들이 분주해보였다. 의외로 이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느꼈다.


 이윽고 한 남성이 객실로 들어왔다. 큰 키에 나보다 조금 어리게 보이는 친구였다. 낯선 상황이지만 나는 빠르게 생각했다. 어차피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같이 지낼 룸메이트이니 만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환하게 웃으며 아래로 내려가 악수를 청했다. 그는 중국어로 뭐라 말하긴 하였으나 내가 이해하지 못하여 영어로 다시 인사했다. 그는 영어를 할 줄 몰랐지만 짧은 단어들과 몸짓으로 반갑게 인사를 맞이해주었다. 이후 여행을 하면서도 내가 깨달은 것 중에 하나는, 모든 여행자는 기본적으로 이방인이고 그렇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인사를 제대로 마치기도 전에 기차는 바로 출발했다. 우리 객실에 다른 승객이 없는 것을 알자 좌측 1층을 쓰는 그는 우측을 다 내가 쓰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나도 그와 대화를 더 해보고 싶어서 2층 침대에 짐을 올려놓고 1층으로 내려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는 몽골 청년으로서 지금 몽골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중국인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몽골인이라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중국에서 세계일주를 시작하면서 나에겐 여행자로서의 생존기술이 하나 생겼다. 나는 가난한 여행자였고 당시 모든 여행의 숙박과 정보를 현지인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이야기 하자면 현지인들과 친구가 되지 못하면 자금이 금방 떨어져서 나는 계획한 여행을 완료할 수 없을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현지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인 숙제였다. 그렇게 중국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나는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해 좋은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고 그 덕에 큰 비용 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돈을 아끼려는 목적만으로 그렇게 잘 해준 것은 아니었다. 좋은 친구를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한 주 동안 한 평 남짓한 방에서 같이 지내야 할 이 친구와도 나는 의식적으로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신기하여 내가 그런 마음을 먹게 되면 정말로 저 친구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었다. 나와 비록 나이 차는 있지만 그런 거 다 잊고 우리는 즐거운 인사를 나눴다. 그는 나에게 자신은 23살의 트루멘자갈이라는 몽골인으로서 중국에서 건축학을 배우고 건설회사에서 짧게 근무한 뒤, 몽골에서 건설업을 하는 아버지와 형의 일을 돕기 위해 귀국한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같으면 군대에서 막 전역했을법한 나이인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까지 와서 사명감을 가지고 금의환향하는 모습이 대단해보였다.


 나도 간단히 내 소개를 했다. 처음 하는 인사자리에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다 이야기 할 수는 없는지라, 나는 서른 두 살의 남자로서 최근 하던 일들이 줄줄이 다 실패하여 그나마 더 늦기 전에 모든 사람들의 꿈인 세계일주를 하고 싶어 보름 전에 여행을 출발했다고 말했다. 목표는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계획을 짠 것은 아니고 그냥 발길 닫는 대로 약 일 년 정도 목표로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흥미가 있는지 그도 자신이 다녔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보통 여행자들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된다. 자신들의 여행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한다. 한참 대화가 무르익자 우리는 지도를 꺼내고 온갖 이야기꽃을 피웠다. 얼마나 수다를 떨었을까 말하는 것도 힘이 차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난 일주일간의 북경 여행을 마치고 어제 세 시간밖에 자지 못한 상태였다. 그도 아마 이른 아침 기차를 타기위해 새벽부터 서둘렀을 것이다. 우리는 잠깐 눈을 붙이기로 하고 양쪽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니 여전히 창밖으로 높은 태양이 객실 안을 비추고 있었고 그 따스한 온기를 만끽하고 있으니 그 인기척에 친구도 눈을 떴다. 한 서너 시간은 잔 것 같은데 그래도 이른 오후다. 기차라는 갇혀있는 공간에 있어서였을까?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생각만큼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한편으론 이렇게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일주일을 보낼 생각을 하니 아득한 마음도 들었다.

 이미 몇 시간을 대화했으니 이제 그다지 할 이야기도 새로운 것이 없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더욱 그런 것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아이디어가 생각났는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노트북 속에는 많은 영화와 만화책, 중국 TV프로그램 동영상들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앞으로 장기 여행을 하면 심심할 터이니 자신이 이 파일들을 복사해주겠다고 했다. 나도 마침 혼자하는 여행이니만큼 필요하겠다 생각하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여행 예산조차도 없이 가난한 나였지만 가진 재산을 다 팔아 여행을 위해 산 미니 노트북이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이 들어갔다. 이것들만 보아도 여행이 지루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중국에서 몽골 국경을 건널 때 4시간의 긴 대휴식이 있다. 두 나라의 궤도 폭이 달라서 바퀴를 교체하는 작업을 한다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갖는 긴 휴식이니 만큼 승객들은 삼삼오오로 밖에 나가서 산책을 했다. 비록 한나절이지만 그 좁은 객실에만 있었으니 답답했던 건 모두 비슷했으리라.

 마침 한 명 있는 룸메이트가 몽골인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다른 승객들은 역 안에 있는 매점이나 왔다 갔다 했지만, 내 친구는 이 근처 시티투어를 간단히 하자고 제안했다. 자신이 아는 도시이며 이 기차를 많이 타봐서 종종 들른다고 했다. 나에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아니었으면 나 역시 역사 계단에 앉아 시간이나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싶다.


 그를 따라 역에서 나와 몽골 땅에 받을 내딛으니 새삼스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새로운 곳에 온다는 것은 언제나 흥분되는 일이다. 그 곳은 국경지역의 외곽도시였는데 한 시간 정도만 걸어도 동네를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그래도 노래방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고 주택도 있고 엄연한 몽골의 소도시 분위기가 났다. 그는 허기가 지니 식사를 하자고 했다. 동네에는 나와 같은 외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레스토랑도 있었지만 그는 허름한 동네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우리나라로 치면 기사식당 같은 분위기였는데, 한국도 그렇지만 그런 서민식당이 값도 저렴하지만 맛도 있는 곳이 많아 기대가 되었다. 그가 주문해준 것은 양고기를 넣어 만든 볶음밥 같은 것이었는데, 우리나라 음식 중에 소고기덮밥과 비슷한 모양새였다. 더불어 몽골 전통차도 물 대신 주었는데 든든히 배 채우고 따뜻한 몽골 차 한 잔 마시니 이것이 역시 여행이 맛이라고 만족했다.

 밥을 먹고 나가려고 하니 그가 먼저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나는 놀라며 소개해주고 가이드 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식사는 내가 사겠다고 하자 그는 한사코 자신이 사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 미안하여 신세를 지게해서 어떡하냐고 묻자 그는 짧은 영어로 더듬거리며 이렇게 대답했다. “Because you are my guest".

 짧은 말이었지만 이 말은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내 인생에 큰 울림을 준 말이었다. 그와 나는 우연히 기차에서 만났고 언제 또 다시 만날지 모르는 이방인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현대의 인간관계속에서 과연 나는 다시 보답 받지 못할 사람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을까? 게다가 내가 도움을 받고 있던 상황에서 말이다. 나는 그와 헤어진 이후로도 저 말을 계속 곱씹었다. 나는 과연 내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Guest 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삶을 살고 있었는가? 과연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나는 조건 없이 내 돈과 시간을 줄 수 있었는가? 


 내가 만난 거리의 스승들은 이렇게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마침 그날 밤 또 사건이 있었다. 국경을 넘을 때 갑자기 여권 검사를 하다가 거칠기로 유명한 몽골의 군인들이 나를 기차 밖으로 끌고 나간 것이다. 오밤중에 취조실 같은 사무실로 데리고 가더니 덩치가 산만한 남성이 위협적인 태도로 나에게 계속 위압을 가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나는 애초에 몽골에 들를 예정이 없이 기차로 지나가기만 하는 거라 비자를 얻지 않았는데 왜 비자가 없냐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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