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교육,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 4편
다소 극단적인 제목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제 개인 의견이라기 보다는 미국의 창업 교육기관들에서도 많이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최근에 나온 가장 권위있는 창업교과서 중 하나인 Heidi Neck의 <Entrepreneurship : The Practice and mindset>에서도 창업교육이 사업계획서(Business Proposal) 중심으로 가고 있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더라구요.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도 사정이 그러하다니 대부분 상황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서 활발히 창업교육을 하는 입장에서 체감하는 비율은, 우리나라의 전체 창업교육의 절반은 사업계획서(정부지원사업 혹은 투자유치)와 비즈니스모델캔버스라고 생각합니다.
아래와 같이 간단한 질문으로 답을 낼 수 있습니다. "사업계획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사업계획서가 중요합니까?".
당연히 사업계획이 중요하지요. '사업계획서'는 '사업계획'을 문서로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좋은 사업 계획이 있으면 사업계획서도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좋다는 의미는 사업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창업교육은 '좋은 사업 계획을 만드는' 교육 보다는 '잘 먹히는(정부지원사업이나 투자자에게 먹히는) 사업계획서 작성법'을 가르칩니다. 조금 더 철학적으로 들어가보자면 이건 본질이냐 표현이냐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프레젠테이션 교육이 있다고 칩시다. 좋은 프레젠테이션은 기획이 탄탄한 것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디자인이 예쁜 것이어야 할까요. 당연히 입으로는 전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보기 좋은 슬라이드를 잘 만들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내용이냐 형식이냐의 질문입니다. 현재 사업계획서 교육이 곧 창업 교육이 된 이유와 비슷합니다.
저는 이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우리나라의 창업 생태계 자체가 정부지원자금에 의해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많은 예산이 풀려있고 이로 인해 예비창업자나 초기창업자가 너도나도 지원금을 타서 사업 하려고 합니다. 창업이 마치 공모전처럼 되어 버린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직접 매출을 발생하지는 못하고 지원금으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기업'들이 속출하게 되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 창업 생태계의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둘째, 정답 찾기라는 우리 나라의 교육 문화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창업 교육을 할 때마다 느끼는 점입니다. Entrepreneurial mind라고 하면 기존에 없는 길을 찾아 개척하는 행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예비 창업가들의 경우 수학 문제 풀듯이 사업계획서 항목에 가장 적합한 답을 적어놓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시장크기를 정할때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규모를 추정하는가(저는 개인적으로 이건 거의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장 규모보다 경쟁강도Degree of competition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를 구글 입사 테스트 하듯이 페르미 추정기법을 통해 답 찾고 그러던가, 추정매출(사실 매출은 맞을 수가 없습니다. 추정이라기 보다는 목표에 가깝습니다)을 설득하기 위해 전문용어인 온갖 마케팅 지표를 동원하곤 하는데 저는 그게 본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거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가 문제에 '정답'을 찾는 방식에 너무나 길들여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지원사업을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법 외에도 투자유치를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법 교육도 매한가지 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현재 창업교육을 담당하는 큰 축이 투자계입니다. 엔젤투자자, VC 심사역, 엑셀러레이터 등이 교육을 담당하는데 이들의 전문 영역이 투자이기 때문에 교육의 방향도 그들이 아는 분야인 투자자 관점에서의 교육으로 되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투자전문가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직무 전문가나 산업 전문가들도 필요합니다. 유통, 물류, CRM, HR 등의 직무 전문가 교육 혹은 모바일, 뷰티, O2O, 커머스 등의 산업 전문가 교육이 무척 부족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지원자금이나 투자금 유치를 위한 교육만 범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설령 지원금이나 투자금을 받는다 해도 그 이후에 사업을 영위할 기초체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비즈니스모델캔버스(이하 BMC)가 교육 시장을 휩쓴 이유를 저는 아래와 같이 봅니다.
첫째, 우선 (해외에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컨텐츠이고(BM에 관해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컨텐츠입니다)
둘째, 장표 한장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쉽고 간편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셋째, 글로벌로 유행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교육 및 적용에 대해 어느 정도 규격화된 가이드라인이 있으며
넷째, 이런 이유로 일단 BM을 모르는 사람도 알 정도로, 그냥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BMC의 문제점은 아래 3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BMC의 한계는, 이것이 아이디어를 만드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건 Visual Framework에 더 가깝습니다. BMC를 통해 사업아이디어를 항목에 맞춰서 정리할 수는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아이디어를 만드는데에는 또다른 Tool이 필요하고, BMC를 통해 만든 사업 아이디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BMC의 몇십배는 더 복잡한 추가 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이 글에서 사업계획서와 BMC를 같이 묶은 이유가 있습니다.
BMC는 결국 우리가 사업계획서에서 이야기하는 항목들을 한장의 장표에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실제로 사업계획서 워크샵에 가면 BMC를 먼저 작성한 후에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풀어서 사업계획서로 작성하는 수업이 많습니다.
둘째, BMC교육의 또 다른 문제는 이것이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대우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강조한 대로 BMC는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심지어 누락된 내용도 많습니다. 창업의 단계를 10단계로 치자면 BMC는 1단계만 커버하는 툴입니다.
그럼에도 창업교육=비즈니스모델캔버스교육이라고 인식을 하게 된다면, 이건 솔직히 교육 기획자의 책임입니다. 이게 먹히는 이유는 위 1번과 같습니다. BMC교육이 곧 사업계획서 교육이고 이를 통해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고자 하는 예비창업자들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실제 창업을 해보면 최초의 비즈니스 모델이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현재 Series C 이상 성공한 스타트업중에 초기 모델을 그대로 가지고 간 회사는 없습니다.
즉 초기 아이디어 정리 외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SWOT 분석이 왜 현업에서 쓰이지 않는지 아십니까? 이것도 별로 현실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는지는 다 알지만 SWOT분석의 결론은 결국 "잘하는 분야는 잘하니까 더 잘하고, 못하는 분야는 못하니까 노력해서 더 잘하자"라는 식의 결론밖에 도출되지 못합니다. 저는 BMC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지금 머리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항목별로 나눠서 각각의 칸에 채우고(사업계획서 작성과 유사-그러나 더 간결함) 그대로 BM을 발전 시키자는 건데 이게 완전 초창기만 넘어서도 별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셋째, BMC에는 What만 있고 How가 없습니다.
Key Partner가 누구인지를 설정하는 것보다 그들을 찾아가서 사업 제안을 하는게 훨씬 훨씬 더 중요하고(물론 그걸 위해서 잠재 리스트를 만들 필요는 있지만, 캔버스에 몇 줄 적는 정도가 아니라 영업관리 수준으로 엑셀에 리스트업을 수십개씩은 해놔야 합니다), Customer를 알기 위해서는 페르소나 캐릭터를 만드는 일보다 직접 잠재고객을 수백 수천명을 만나는게 백배 천배 더 중요합니다.
즉 BMC는 이러한 Implementation을 위한 사전작업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길 가는 사람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혀 놓고는 발이 침대 밖으로 나가면 나간 만큼의 발을 자르고, 침대보다 작으면 다리를 잡아 늘려 죽이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자신의 생각만을 기준으로 타인의 생각을 맞추려는 사람을 비유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저는 캔버스를 볼때마다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The Procrustean Bed)가 생각납니다. 침대 밖으로는 나갈 길을 열어 두지 않고 그 틀에 맞춰서만 생각하게 만드는 도구라는 느낌이지요. 프레임워크 위주의 교육은 가이드에 용이하긴 하지만 자유로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교육학적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사업계획서 작성법 교육과 BMC 교육이 가진 장점도 있습니다.
제가 제기하는 문제는 너무 이쪽으로 쏠려있다는 점입니다.
그럼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는 다음 연재에서 이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