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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초이 Aug 09. 2020

집시지만 괜찮아

겉바속촉: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한 그들.

과외 전단지처럼 그라나다 곳곳에 플라멩코를 가르쳐주는 전단이 종종 붙어있는 모습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에 하나인 ‘정열과 열정’,‘뜨거움’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는 전통 춤, ‘플라멩코’가 있다. 사실 플라멩코라는 전통 춤은 스페인의 전통 춤이라기 보다는 스페인으로 이주한 ‘집시’들의 전통 춤이 더 맞는 표현이다. 집시라는 말이 탄생된 이야기가 정말 다양한데,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던 이 집단이 유럽 땅에 처음 발을 붙이게 되었을 때, 이집트인과 닮아있다라고 해서 ‘이집시안’으로 불리던 것이 ‘집시’까지 변형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집시들은 대부분 까무잡잡한 피부에 키는 살짝 작고, 스페인 남부사람들과 생김새가 닮은 듯 하면서도 묘하게 자신들만의 분위기를 풍겨낸다. 강하고 야릇한 짙은 향수냄새, 풍성한 머리카락, 그리고 짙은 이목구비와 화려한 악세사리들은 그들만의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Sacro Monte, 집시들이 모여사는 그라나다의 한 마을이다.

내가 살았던 그라나다에도 집시들이 모여사는 마을, 사크로몬테(Sacro Monte:신성한 언덕)가 존재한다. 하얗고 파란 집이 가득한 마을이다. 사실 하얗고 파란 집하게 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는 그리스라던가 에메랄드 바닷빛이 가득한 해안도시등이 떠오르는데, 이 하얀 집시마을은 강을 옆에 둔 산에 위치하고 있다. 그라나다 높은 곳에 가면 어디서든지 볼 수 있는 이들의 마을. 동굴집에서 생활했던 집시들은 그 전통을 이어 아직도 그 동굴집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겉에서 보기에는 일반적인 집과 비슷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동굴을 개조해서 만든 집 혹은 플라멩코 공연장이 존재한다.


플라멩코가 처음 상업적으로 유명해진 곳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세비야라고 전해진다. 그 때 레스토랑에서 처음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했기에, 지금도 그 전통을 이어 대부분의 플라멩코 공연장은 아직도 음료나 음식을 먹으며 편안하게 공연을 즐기는 형태이다. 스페인 그리고 스페인 공연 문화를 접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가 이렇게 공연장에서 음료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문화였다. 물론 모든 공연장에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스크린을 통해서 보는 영화관 같은 경우는 팝콘이나 콜라나 맥주를 즐기며 볼 수 있지만, 연극무대라던가 뮤지컬등을 보며 와인한잔을 마시는 것...?굉장히 예의없고 무례한 행동으로 생각할 것이다. 스페인 뮤지컬 극장에서 팝콘과 음료를 즐기며 공연을 보는 것이었고, 그리고 플라멩코 공연장에서 상그리아를 마시며 함께 춤을 즐기는 것이었다. 확실히 이 나라는 더 격식없이 자유롭다. 


동굴 플라멩코 공연장이자, 그들의 삶의 터전인 곳

가이드로써 그라나다에서 진행했던 플라멩코 투어는 손님들을 사크로몬테의 유서깊은 플라멩코 집시가문의 공연장으로 데려다 주며 플라멩코라는 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투어였다. 손님들의 인원에 맞게 공연장에 예약을 해야했고, 예고없이 불참하는 손님들 때문에 공연장과의 마찰이 있기도 했다. 스페인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스페인어를 잘 못했다. 영어야 아무리 우리나라가 수능을 위한 교육이다, 이론식 교육이다 하더라도 어쨋거나 가장 친숙한 외국어였기 때문에 어느정도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지만, 스페인어야 말로 나에게는 아주 생소한 언어였다. 마치 아기가 처음 언어를 배울 때처럼 눈빛 손짓 모든 것을 동원하고, 그리고 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성인이기에 핸드폰 번역기를 이용해가며 그 아기가 최선을 다해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연장과의 마찰이 있던 날, 나는 영어로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지만 플라멩코 공연장의 집시가 나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너, 스페인에 왔으니까 영어로 하지말고 스페인어로 이야기 해!’


짧은 스페인어 실력으로도 그 손짓과 눈빛과 단어들을 통해서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 날, 손님들이 공연을 보는 1시간 동안 혼자서 많이 울었다. 낯선 땅에서 처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리고 더 낯선 도시에 홀로 남겨진 나에게 울 수 있는 구실을 준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인데, 그 때의 어린 나는 많이 서러웠나보다. 그리고 그 날을 계기로 갑자기 스페인어 공부에 열을 올렸던 때가 있었다.(물론 그리 길게 가진 않았다.)

그 날 이후로 나는 플라멩코 집시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딱 일하기 위해 필요한 의사소통정도를 배웠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이로 아주 적당한 사이를 계속 유지했다. 그리고 나는 그라나다를 떠나던 그 날도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 한번 하지 않았다. 후에 그 인사도 하지 않고 온 것이 그렇게도 후회가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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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난 뒤, 다시 그라나다를 찾은 나는 나를 혹시 잊었을까, 혹은 그렇게 떠난 나를 반가워할까 약간은 멋쩍은 마음과 함께, 그리고 약간은 예전에 싸운 친구를 만나는 어색한 마음과 함께 플라멩코 공연장을 다시 찾았다. 프란치스코는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으며 도스 베소스(양 볼을 맞대며 뽀뽀하는 스페인식 인사법)를 하며 나를 아주 반갑게 맞아줬다.


“초이, 꽌또 띠엠뽀!!!!!(초이 이게 얼마만이야!!)”

"초이~꼬모 에스따스~!!!(초이 어떻게 지냈니!)"


너나할 것없이 집시집안의 사람들은 볼뽀뽀와 포옹을 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순간 너무나 고맙고 행복했다. ‘집시’라는 약간은 무서운 이미지가 있었던, 그리고 내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그들은 언제나 내가 마음을 열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마냥 나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천국을 만드는 간단한 방법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지옥을 만드는 간단한 방법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라는 김구선생님의 말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중에 하나다. 나는 너무나도 쉽고 아쉽게도 지옥을 만들고 있었고, 또 그 지옥은 너무나도 쉽게 천국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 이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거칠고 무뚝뚝해보여도 촉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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