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에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내가 운 좋게 중증발달장애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덕분이었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로 평등하지 않았다.
-어른이 되면 중-
청력이 좋지 않은 건 가족력이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 TV의 볼륨은 100에 맞춰져 있었다. 우리 집에서 TV를 보면 옆 집에서 무슨 프로그램을 보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불편함을 모르고 살다가 교직을 시작하면서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한 교실에서 아이들의 말들이 소리로만 전달되고 언어로 인지되지 못했다. 손을 들고 발표하는 아이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인식할 수 없었다.
4층 계단에서 침을 뱉어 올라오는 사람들 정수리에 명중시키기, 창문으로 팩우유를 던져 주차되어있는 차들에게 우유목욕 시키기 등등 늘 뭔가 신박한 문제만을 일으키는 학생이 하나 있었다. 이십 년 전인데도 그 아이로 인해 학교를 쉬는 선생님들이 여럿 있었다.
하루는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친구에게 쪽지를 전달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곤 쪽지를 압수했다. 그리고 도대체 뭘 썼는지 궁금해서 펼쳐봤다.
"담임 귀머거리 병신새끼"
중증발달장애도 아닌 경미한 청각 장애에도 이런 조롱과 혐오를 잔뜩 담을 수 있구나. 너의 청력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청력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란다. 아이들의 세상은 어른들의 세상보다 훨씬 더 잔혹하다. 경멸과 조롱과 집단따돌림이 만연한 곳이다. 이런 잔혹성이 인간성이 아닌 무지에서 온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새 학기가 되면 늘 간단한 장애이해교육을 하고 시작한다. 90%의 장애는 후천적이라는 사실, 우리는 아직 장애인이 아닐 뿐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우리는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사실, 지금 우리가 장애를 이해하고 편견을 없애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일은 미래의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나의 청력 상태에 대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좀 더 크고 또박또박 말해주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왕 이면 포스트잇에 하고싶은 말을 적어 붙여두면 더 꼼꼼하게 읽어보겠다고도 덧붙인다.
아이들은 그런 나를 이해해고 사랑해준다. 내 귀에 바짝대고 귀청떨어지게 소리지른다.
쌤 저 쉬싸고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