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에 비친 영화와 문학
기내에서 영화 <러시: 더 라이벌>을 봤다. 평소 놓친 영화를 허공에 기대어 보는 것도 여행하는 즐거움의 하나일 것이다. 론 하워드 감독은 1970년대의 격정적인 F1 레이스 장면을 스크린 위에 멋지게 풀어놓았다. 페라리와 맥라렌, 로터스가 격돌하던 그 시대는 지금보다 더 낭만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낭만도 거대한 쇼 비즈니스의 일부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세상에 목숨을 건 낭만이 어디 있는가.
영화는 니키 라우다의 음성으로 제임스 헌터와의 라이벌 관계를 회상한다. F3에서 라이벌로 만난 두 사람은 F1에서 만나 1976년 운명적인 대결을 펼친다. 니키 라우다는 냉정한 천재. 스스로를 끊임없이 담금질해야 하기 때문에 행복은 적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해지는 순간 나태해지고 그러면 챔피언은 끝이라는 것. 제임스 헌터는 인생은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이스도 그 과정 속에 있다는 것. 내일 레이스에 나가 목숨을 잃더라도 오늘을 즐긴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기에 오늘을 즐기는지 모른다. 그만큼 레이스의 세계는 열정에 가득 찬 것임과 동시에 위험하다.
그런데 이 두 사람. 왠지 낯설지 않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 둘의 모습이 모두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한쪽에 서 있으면서 다른 한쪽을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아일랜드 태생의 극작가이자 비평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가 남겼다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처럼 말이다. 아무튼 인생이란 레이스에서 우리 모두는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는지.
뉘르부르크링에서 경기 중 충돌로 라우다는 화염에 휩싸이는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40여 일 만에 서킷에 다시 나타난다. 헌트로부터 자신의 월드 챔피언을 지키기 위해서 병실을 박차고 나온 것이다. 하지만 타이틀이 걸린 시즌 최종전. 폭우가 쏟아지는 일본 그랑프리에서 라우다는 경기를 포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흔히 레이스는 인생의 축소판이라 하듯 이 영화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영광과 실패, 화려함과 쓸쓸함에 대해서. 그리고 라이벌과의 극한 경쟁을 통한 자기 발전까지. 그렇다면 둘의 승부는 어떻게 되었을까? 니키 라우다는 이후 레이스에서 챔피언 승수를 쌓아가지만 헌트는 그러지 못한다. 니키 라우다의 승리다. 하지만 그것은 보이는 것일 뿐. 저마다의 인생이 다른 법이므로.
헌트는 45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그의 죽음에 대해 라우다는 이렇게 독백한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놀라지 않았다. 다만 슬펐다. 그는 내가 부러워하고 좋아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F1은 지금도 여전히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레이스. 매년 치열한 레이스와 드라마가 펼쳐진다. 우리나라도 F1 개최국이 되었으나 올해 캘린더에서는 일단 제외되었다. 문화가 바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만 연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슈마허가 스키 사고로 지금 코마 상태에 놓여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부디 다시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지는 이번 2월호로 창간 6주년을 맞이했다. 한 해를 더하는 일이 저절로 챔피언 승수를 쌓는 일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노력할 뿐이다. 독자 여러분도 저마다의 인생에서 승리하기를 빈다.
*니키 라우다는 이 글이 쓰인 5년 후인 2019년,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2014.2월호 에디터스 노트 @autocar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