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와 제니

아침숲길

by 최주식

어쩌다 냥이 밥 준 후로/ 코가 꿰었다/ 대개는 밤손님처럼 다녀가지만/ 가끔 얼굴 마주치면 도망가기 바쁘다/ 나야, 너 밥 주는 사람이라고/ 말이 끝나기 전 가고 없다/ 밥은 내가 주는데/ 눈치는 내가 본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종종 봤다 이거지/ 몸을 뒤로 뺀 채 앞발에 힘을 주고/ 여차하면 튈 자세다/ 내가 뭘 어쩐다고/ 쳇. 고양이 (‘쳇. 고양이’ 전문)
길고양이는 경계심이 많다.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이태 전 어느 날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아내가 일하는 카페 유리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귀여워서 나가보니 금세 달아났다. 며칠 그렇게 밀당을 했다. 아내는 고양이 밥그릇을 사서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아는 체는 하지 않고 빈 그릇만 채워놓았다. 얼마 후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와서 먹이를 먹었다. 처음 온 노랑 고양이는 치즈라고, 나중 온 검정고양이는 고등어라고 불렀다.

치즈와 고등어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등어는 가끔 자취를 감추었지만 치즈는 꾸준히 들락거렸다. 나도 가끔 밥을 주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다. 그런데 도무지 곁을 주지 않는다. 마음을 주는 일은 늘 비대칭이다. 그런 치즈가 좀 서운했다. ‘쳇. 고양이’라는 미발표 시는 그런 마음을 담았다.

그러고 보니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김장하 선생의 말씀이 떠올랐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이야기로 널리 알려지기 전, 나는 MBC경남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통해 그 이름을 먼저 만났다. 그때의 울림은 오래 남았다. 선생은 한약방을 하며 모은 재산을 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이웃을 돕는 데 썼다. 주고 난 뒤에는 이러쿵저러쿵하지 않는다는 그 철학이 이 한 마디에 농축돼 있다. 그러니까. 고양이 밥 좀 준 걸, 뭐라고.

그러는 사이 치즈는 배가 불러 다녔다.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밥 주는 걸 빼먹지 않았다. 한참 보이지 않던 치즈가 새끼를 데리고 함께 왔다. 처음 치즈를 만났을 때보다 더 작고, 더 여리고, 더 예뻤다. 천진한 눈과 복슬복슬한 발까지. 아내가 ‘제니’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제니는 아직 눈칫밥을 덜 먹었는지 경계심이 옅었다.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은,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그러니 정이 더 갔다.

그리고 고등어도 새끼를 데려왔다. 잠시 머물다 갈 모양이었다. 고양이 네 마리가 테라스의 빈 화분을 캣타워 삼아 오르내렸다. 새끼를 데려오는 건 그곳을 안전하다고 여긴다는 뜻이라 했다. 제니는 욕심이 많다. 자기 몫을 다 먹고도 치즈의 밥그릇에 고개를 들이민다. “제니, 그만 먹어. 엄마 좀 먹게.” 아내의 말에도 제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제니가 예뻐서 아내는 연어 츄르까지 챙기고, 낚싯대마저 들였다. 어떤 날은 팔이 저릴 만큼 놀기도 했다.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날이 며칠이나 이어졌다. 고양이들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잠자리는 따로 있는 듯했지만, 아내의 걱정은 점점 커졌다. 어느 아침, 카페 문을 여는 순간 제니가 담요를 깔아 둔 테라스의 종이박스 안에서 폴짝 튀어나왔다. 밥을 달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일찍 와서 기다린 건 처음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그날 제니는 햇살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졸고, 먹고, 놀며 온종일 머물렀다.

그런 제니는 이제 오지 않는다. 대신 치즈만 혼자 와서 밥을 먹고 간다. “제니 어쩌고 너 혼자 와!” “어서 제니를 데리고 오란 말이다!” 아내가 타박하듯 말해도 치즈는 멀뚱한 얼굴이다. 치즈는 제니를 독립시킨 게 분명했다. 그리고 맨 처음 자신의 영역을 지켜냈다. 어쩌면 제니는 그날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인지도 모른다.

길고양이는 문을 열어두어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결코 문턱을 넘지 않는다. “문지방에 앉지 마라” 옛 어른들은 아이들이 문턱에 걸터앉으면 나무랐다. 복이 나간다고 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뜻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야 모진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제니가 택한 것은 문 밖이었다. 아내는 오늘도 문 밖을 내다보지만 제니는 오지 않는다. 가면 그만이지.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국제신문> 2.25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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