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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KE Apr 20. 2023

ep.9 큐레이션을 크리에이티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주 예전에 일을 했던 601비상이라는 스튜디오는 마당이 있는 3층 주택을 개조한 형태였습니다. 작업 공간, 작은 갤러리, 작업물을 보관하는 공간이 입체적이고 운치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좋아했던 공간은 디자인 외서들을 모아놓은 도서관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스튜디오에 라이브러리를 갖춘 곳들이 꽤 있지만, 당시로는 흔치 않았어요. 도서관의 책들은 주로 해외 유명 광고, 그래픽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모아서 소개한 도록들, 여러 디자인 아웃풋을 모은 작품집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엄청 활성화되어 있어 외국 자료들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곳은 마치 보물상자 같은 곳이었습니다.


저는 해상도가 좋지도 않은 디지털카메라로 책에 실린 작은 이미지들을 사진 찍고 스캔을 하며 가능한 많은 이미지들을 수집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수집한 이미지들을 다시 찾아보거나 열어본 적은 없지만, 외국의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배가 부르고 든든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우연한 심부름으로 대표님 개인 집무실에 들어가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도서관에 실려있는 작품들의 실물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에 있던 자료들이 큐레이션 된 자료들이었다면, 대표님 방에 있는 책들은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원서였습니다. 그 경험은 작품의 외형, 커버, 단순히 이미지를 넘어서는 다른 차원의 경험이었습니다. 그즈음부터 저는 더 이상 무분별하게 이미지를 수집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정보의 과잉입니다. 누구나 쉽게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관점과 해석들이 정답처럼 존재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큐레이션 된 콘텐츠를 크리에이티브라고 볼 수 있을까요? 물론 관점과 주관 그리고 취향을 기반으로 한 큐레이션은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요즘 큐레이션 된 것을 다시 무분별하게 재생산하는 콘텐츠들은 보기 불편합니다. 다양한 관점의 이야기가 생산되고 공유되는 분위기는 좋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직접 경험해 보고 주관을 가지고 따져보며 내게 필요한 정보를 거르고 해석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이 이야기를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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