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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드레아 Nov 21. 2022

어디까지가 상식일까?

상식적으로 그건 아니지 않나?





+ 함께 기재된 내용.


그러나 우리가 일상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식도 과거의 철학자들의 독창적인 사색과 고찰 결과 얻어진 것이 허다하다. 철학은 누구나 다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자명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전복하고 처음부터 다시 고찰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얻어진 결과가 다시 상식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어떤 기인(奇人)의 비상식적인 말이 오늘의 상식이 될 수 있고 과거의 상식이 오늘날에 와서는 진부하고 괴이한 비상식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상식 [common sense, 常識]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내게 질문했다.


"넌 상식의 경계가 어디라고 생각해?"


"웬 상식?"


"얼마 전에 여자친구가 전 애인 이야기를 자연스레 하길래 기분이 좀 상해서 상식적으로 그건 좀 아니지 않냐고 말했어.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어디까지 상식이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고. 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서 그래."




"상식이라... 난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어쩌면 전 애인 이야기를 현 애인 앞에서 함부로 꺼내는 게 별로 좋지 않다는 건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주장일지도 몰라. 네가 동의하는 것처럼.


일단 처음으로 너의 주장이 정말 상식에 속하는지부터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네. 상식이란 사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알고, 또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식/이해력/판단력이지. 만일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적절한 근거를 대고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면, 너의 말은 상식이 될 수도 있어. 그러나 이미 너의 애인이 동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상식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


그렇게 따지면 세상에 상식이 어딨냐고? 맞아. 세상에 상식은 없어. 네가 상식이라는 단어를 썼을 때를 떠올려봐. 어떤 상황이었지? 아마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경우가 많을 거야. 상식이 많다고 칭찬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애초에 상식의 정의가 '알아야 하는 지식' 이기 때문에, 몰랐을 때 문제가 되는 개념이지 안다고 칭찬을 받을 만한 건 아니거든. 상식으로 칭찬을 했다면 애초에 상식이 아니라 교양 정도가 되겠지.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남에게 상식이 부족하다고 말을 하는 경우도 참 이상해. 상식은 너와 나를 제외하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우리 둘과 비교하는 행위야.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제 기능도 못하고 있어. 상식의 기준을 쉽게 정할 수 없다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대한민국의 평균 지식수준으로 정해볼까? 실제로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50%, 2500만 명을 상식이 부족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텐데 그게 올바른 방법일 리가 없겠지. 그런데 반대로 국민의 평균으로 계산할 수 없다면, 역설적으로 상식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게 되겠지. 즉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제 기능을 못한다는 뜻이고, 여기서 첫 번째 모순이 발생하는 거지.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이유도 없어. 너는 너의 애인과 대화하고 있는 것이지 대중들과 대화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너희 관계는 너와 애인, 이렇게 두 명이서 이루고 있는데 그 밖에 있는 사람이 의미가 있을까? 너희 둘이서 상식을 논할 거라면 그 기준이 오직 너희 두 명이 되어야만 해. 그래야 너희 관계에 실제로 의미가 있는 상식이 될 테니까. 만약 네가 연예인이거나 인플루언서라면, 상식의 기준을 한 번쯤 정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 왜냐면 실제로 대중들과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니까.


사람들은 오직 자신의 기준으로 상식의 경계를 정하곤 해. 고등학생이 생각하는 상식 수준과 내가 생각하는 상식 수준은 다르겠지. 누굴 앉혀놔도 조금씩은 다를 거야. 그런데 내가 고등학생에게 상식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게 옳은 일일까? 내가 가진 상식의 수준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고? 그럼 고등학생이 중학생에겐 말할 수 있을까? 중학생이 초등학생에게는? 그런데 나이가 정말 중요한 걸까? 여기서 다시 모순이 발생하지.


네가 정하는 상식의 기준이 영향을 미치는 대상은 너와 너의 애인 두 명밖에 없어. 그런데 엄한 곳에서 기준을 끌어오면 불화가 생기지. 세상에서 너희 둘만 남았다고 생각해 보자. 너의 의견과 애인의 의견의 영향력 비율은 1:1이야. 너의 의견이 가지는 가치가 애인이 가지는 가치와 완전하게 동일한 거지. 그러면 둘 중 한 명의 논리가 맞다고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 오직 너희 둘의 합의점을 찾는 것일 뿐이야. 너희가 정말로 사실에 대해 싸우고 있다면 둘 중 한 명이 옳겠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 만약 이순신 장군의 아버지 성별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해서 싸우고 있다면, 내가 정답을 알려줄 테니 주저하지 말고 내게 물어보길 바라.


이제 상식이 없다는 내 말이 이해가 되지? 그런데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할 주제가 하나 더 있어. 바로 네 말의 의도야. "상식적으로 그건 아니지 않나?" 가 지닌 뜻은 "너는 상식이 부족하다."로 해석할 수 있고 다시 "너는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다."로 해석할 수 있지. 마지막으로 "나는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있는데, 너는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옳은 말을 하고 있는 내게 맞춰라."라고 해석할 수 있을듯해. 물론 너의 의도는 다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말은 들으라고 하는 거잖아. 듣는 사람이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 보다 더 중요한 법이지. 내가 이렇게 해석한 것을 들어보니 무시무시하지 않아? 이런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많이 부족하지만, 이렇게 내 이야기 들어줘서 고맙다. 언제나 말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그저 한 사람의 의견일 뿐이야. 너와 너의 애인 사이처럼 말이야. 그렇게 생각해 주는 게 우리 서로한테도 좋고 말야.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예쁜 사랑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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