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첫 학교 밖 친구
학창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친구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나이 때에 있는 친구들과의 우정, 소속감, 애착과 질투, 그 외의 감정들을 느끼지 못했다. 친구란 그저 학교 안에서만 필요한 거였다. 학교에서 함께 수업을 듣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떠는 사이. 그렇기에 학교 밖을 나서는 순간 친구는 필요 없었다.(친구가 필요 없다는 표현이 소시오패스 같아 보이지만, 그 당시 나는 소시오패스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학교 끝나고 노래방 갈래?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고, 학교를 가지 않는 놀토나 일요일, 심지어 방학에도 문자 한 통 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점심을 먹지 않고 있던 내게 한 아이가 '매점에 딸기 우유 사러 갈래?'라고 말했던 때도 난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얘가 딸기 우유가 먹고 싶은가 보다. 그게 끝이었다. 그 의미 없던 순간이 엄청난 운명의 순간이었음을 몰랐다. 딸기우유로 이어진 인연이 초콜릿 우유를 좋아하는 한 아이와의 인연을 만들었고 그렇게 우리 셋은 중학교 3학년을 함께했다. 무엇보다 그녀들은 내 인생의 첫 학교 밖 친구였다. 노래방도 가고, 카페도 가고 맥도날드도 함께 가는 친구.
고등학교를 올라가면서 우리의 인연은 끝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녀들과 다른 학교를 진학하게 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섭섭함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자가 왔다. '너네 학교 운동회 한다며? 놀러 갈게' 그날의 감정은 신기함이었다. 완전히 다른 학교인데, 굳이 학교를 찾아와 놀겠다는 그녀들이 신기했고, 운동회 당일에 나는 그녀들을 기다리는 게 기뻤다. 다른 교복을 입고 중학교 때 함께 갔던 매점을 가서 빵을 먹고 우유를 마시고. 다른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학교 밖에서 함께했다.
2. 또다시 학교 밖 친구
나의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은 중학교 때와 다름없었다. 학교 안에서만 노는 친구들만 즐비했다. 내 진짜 친구들은 학교 밖에 있었고, 학교가 끝나면 그녀들과 놀았기에 더욱 친구 사귀는 것에 흥미가 떨어졌다. (애초에 관심이 없었으니 떨어졌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 듯 하지만... 어쨌든 그랬다.)
고등학교 2학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예술하는 친구 공부하는 친구 노는 친구 다 섞여 있어서 반 분위기가 다채로웠고 그때부터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그 전에는 사람한테 관심이 그냥 없었다.) 사람도 관찰하고 왜 그러는지 이해도 해보고 하다 보니 2학년 반 친구들의 이름이나 얼굴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당시 예쁜 아이가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었다. 다른 반 친구들이 굳이 쉬는 시간에 찾아와 말을 트고 가곤 했었다. 그 예쁜 아이와 슈퍼 인싸였던 아이는 금세 친해졌다. 둘이 친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내가 어쩌다 거기에 끼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가 끝나고 셋은 각자의 집에 놀러 가고, 밥도 먹었다. 3학년 때 반이 달라지게 되었어도 서로를 기다렸다가 놀았다. 난 기억나지 않는데 그녀들 말로는 그때도 나는 먼저 놀자는 얘기를 안 했다고 한다. 성인이 되고 역시나 나는 인연의 미련이 없었다. 그런데 혼자 집에 있는 나에게 술을 마시자고 연락을 해왔다. 술을 함께 마시고 다음 주도 마시고 다 다음 주도 마시고. 서로의 실수를 보고 폭소하고 울고 토닥이고. 그렇게 또 나의 학교 밖 친구가 두 명 더 생겼다.
3. 아무 노력 없이 얻은 것에 대한 고마움
이렇게 나는 아무 노력 없이, 학교 밖 친구가 4명이나 생겼다. 정말 노력한 거 없이. 그래서 그녀들에게 항상 고맙다. 친구의 소중함을 모르던 나를 귀찮아해도 불러내고 조금 이상한 성격이어도 이해해주고, 가시로 찔러서 상처를 줘도 성질 한번 부리지 않고 선인장 그림을 그려 나를 예쁘게 포장해주고, 나도 모르는 내 진심을 알아채 주어서.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변화들의 원동력이 되어주어서.
나의 영원한 학교 밖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넘어 사랑한다고. 말로 못해 편지에 쓰고, 술 취해 농담으로 말하고 또 여기에 멋쩍게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