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져도 괜찮다고 말해준 시간

사람은 존중받을 때 회복된다

by 한도톰

우리는 대부분 내가 가진 유리가 어떠한 유리인지 알지 못한다.

쉽게 깨지는지 금이 가는지.

그런데도 강화유리가 되라고 스스로 몰아붙일 때가 꼭 있다.


상담과 행정을 같이하는 직업 특성 상

내담자들을 만나기 전에 마음을 데우는 시간을 꼭 가지는데, 사람을 만나기 전 마음의 온도를 맞추는 일이다.

지난 회기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오늘은 어떤 지점에 머물면 좋을지를 조용히 떠올린다.


물론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상담인지라 당연지사 다른 이야기로 흘러갈 때가 많지만

그래도 데우는 작업을 가질 때와 가지지 않을 때의 마음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이러한 습관을 꼭 갖게 해주었던 내담자가 있다.

그 내담자와 함께 한 지는, 생각해보니 꼭 3년이 되었다.

내가 살아오며 체험한 세계와 책으로만 배웠던 세계의 경계 어딘가에 놓여 있었다.


리퍼를 해야 할지, 아니면 부족하더라도 내가 더 버티며 함께 걸어갈지.

그 기로에서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어줍잖은 영웅심리나, 근자감은 아니었다.

그 분이 또다시 '떠밀리는 경험'을 겪지 않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여러 교수님들께 수퍼비전을 받으며 공부했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와 감당할 수 없는 한계를 동시에 마주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감 해 주고, 지지 해 주고,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 감정이 옳다라는걸 함께 확인해주는 것뿐이었다.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잘못 건들이면 금이가고, 버티지 못하면 완전히 부서져버리는 그러한 마음이

매주 내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었다.


그 유리의 안부를 꽤, 많이, 아주, 자주 신경썼다.

이미 많은 금을 안고 버텨온 터였다. 그래서 나의 말 한마디, 숨 한번조차 혹여 또 하나의 금이 되지는 않을지 생각되어 조심스럽게 고르고 또 골랐다.


혹시나 부서질까 겉에 뭍은 먼지를 호호 불어보기도 하고, 먼지가 뭍었다고 한 번 일러주기도 했다. 또는 먼지가 뭍어서 많이 불편하겠다고, 괜찮냐고 안부를 물어봐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 유리는 불편함에 대해 이미 익숙해졌는지, 무망감을 표현하거나 오히려 그러한 일러줌에 더 큰 불편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혹은, 어려움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색하여 스스로를 깨버리기도 했다.


그 때, 어떠한 사명감이 타올랐다. 이 만큼 연약해진 이 유리를 나 조차 포기하면 어떻게 될까.

깨어진 유리를 붙여주고 다시 만들어주고, 깨어져도 파편으로 나가지 않게끔 최선의 방법으로 최소한의 위치에서 역할을 해야했다.

그래야만, 그래야만 이 유리가 본인이 원하는 삶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질 것 같았다.


먼지를 알아채고, 상담사가 한 번 떼주려고 하는 그 과정까지 꼬박 1년이 걸린 듯했다.

그리고 먼지를 떼고 싶다는 생각과 먼지에 얽힌 이야기를 꺼내는데도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과정을 롤러코스터처럼,

스스로 먼지를 떼다가 깨지기도 하고 유리를 꾸며보다가

다시 먼지가 뭍어 좌절을 느끼고, 먼지를 뗄 힘이 없어 냅둬도보고,

그러다가 다시 먼지를 닦아내보기도 하고, 닦아내다가 또 다른 먼지가 발견되면 무력감을 느껴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닦아냈을 때의 깨끗한 기분을 함께 느껴보기도 하고.

.. 그러한 과정을 함께 겪기를 또 꼬박 1년이 걸렸다.


가만 들여다보니,

이 유리는 강화유리가 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깨어져도 괜찮게 살아가는 그 경험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내담자에게 큰 힘이 되었던 듯 했다.

그리고 그건 어떠한 통찰, 특별한 기법, 결정적 해석이 문제가 아니었다.


곁의 누군가가 제공하는 끊임없는 존중, 지지, 공감, 격려. 그 자체로도 아름답고, 그 자체로도 빛나며,

'그 자체로도 당신은 소중하다'라는 단순하고도 온전한 그 메세지 하나였다.

백 만번의 메세지 중 한 가지라도 그 유리에게 전해졌을 때, 그 유리는 모양을 고스란히 건사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존중받거나, 인정받거나, 공감받을 때 비로소 마음이 유연해진다.

이미 채찍질로 가득해진 긴장된 마음을 왜 긴장했냐며 구태여 다른 도구로 방편을 달리할 필요가 없다.

그 마음을 간과하지 않고, 알아봐줄 때 상처를 내어 줄 수 있다. 내어줌은 그 상처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존재는 존중받을 때 온전해지고, 방법은 그 이후에 고민 해 보아도 충분히 된 듯했다.

마라톤같은 작업에서 내가 배웠던 건, 그리고 그 내담자와 함께하며 학습한건 인내와 끈기였다.


포기하지 않고, 그러한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은 채

그저 곁에 머무르는 일의 무게를 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사람에게는 깨져도 곁에 남아주는 한 사람이라는 게 100번의 통찰보다 어쩌면 나을 수도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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