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직업? 다만 '유망'만 합니다

개미지옥 같은 상담이라지만 지옥은 아니에요.

by 한도톰

심리상담사는 흔히 유망직업이라고들 말한다.

노후에 좋다는 이야기도 곧잘 따라온다.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백년동안 유망하다가 유망'만' 할 직업이 아닐까 그러한 생각을 해본다.


지금이야 여러 전문가들께서 열일(?) 해주신 덕분에 아동심리부터 시작하여 부부상담에 이르기까지

심리상담분야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익숙한 단어여서 진입장벽이 낮아지긴 했다만,

마치 예술가의 영역처럼 실력있는 사람들만 살아남는, 그리고 버티는 사람들이 살아남는, 그리고 그 과정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에겐 인풋 대비 아웃풋이 비효율적인 직업이 아닐까 싶다.


상담 삐약이 시절,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실상담 수련을 막 시작하려는 때, 수퍼바이저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전세금정도 바칠 준비 다 되셨죠?"


그땐 농담으로 하는 말인 줄 알고 실없이 웃고 말았는데, 생각해보니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나 역시 상담 삐약이 학생들이 직업 인터뷰를 하러 오면

"불확실성에 대한 인내를 가질 준비가 되어있니?" "공수레공수거의 마음을 가질 준비가 되어있니?" 라고 하니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도, 전세금까진 아니고 서울 노른자 땅 어귀에 자리잡고 있는 원룸 월세 금액의 10분의 1을 내어드리러 갈 예정이다.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사람을 알아가고 사람을 마주하는 직업은 정답이 떨어지기 않는다. 그리고 상담에서는 특히 내 생각이 짙어지는 순간을 경계해야 한다(전문용어로는 역전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꾸준히 정기적으로 '수퍼비전'을 받아야하고, 그 수퍼비전을 위한 비용을 언제든지 넉넉히! 통장에 채워야 한다.


보통 한달에 많으면 두 번, 적으면 한 번 정도 수퍼비전을 받는다.

수퍼비전이란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에게 상담 사례에 대한 내용을 지도받아 사례 진행에 대한 전문성을 높여주는 과정을 의미하는데, 해당 과정이 없으면 사례는 산으로 가기 마련이기에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아무리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마음을 먹어도, 상담은 늘 변수 속에서 진행된다.


내담자의 언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고, 내담자와 함께 목표했던 바를 이루고자 상담을 진행하지만 보통 상담은 1회기가 아닌 다회기(6개월 ~ n년)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상담을 진행하는 중간중간 내담자의 개인 이슈가 달라질 수 있다.

때로는 내담자가 해당 문제를 다루고 싶지 않아 알게 모르게 저항을 할 수 있으며,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개입했던 상담 이론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례는, 상담자의 경험과 시각에 영향을 받기 쉽다. 이는 내담자의 니즈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을 배우고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심리상담이 사실 많은 분야에서 통용되고 있다보니, 상담을 비교적 익숙한 영역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상담이라는 게 결국 경청하고 조언하면 다 되는거잖아요. 저도 해 봐서 알아요."


만약 상담이 정말 그런 일이라면, 나는 매일같이 고민하며 전문서적을 뒤적이고, 평일 저녁마다 교육을 듣고, 수퍼비전을 받기위한 보고서를 밤새 작성 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통장 한 켠에 비상금을 쟁여 둘 필요도 없었으리라.


아마 개개인에게 상담을 묻는다면, 정의가 다양하게 떨어질 수 있겠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상담은 이러하다.

경청하고 조언하는 것이 상담이라면, 그것은 '고민상담' 이라고.


상담은 내담자의 삶을 반복해서 무너지게 만드는 지점을 함께 들여다보는 과정이 아닐까?

그리고 비슷한 상황을 다시 마주했을 때, 조금은 덜 흔들리고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일이 상담자의 역할일 것이다.


상담은 상담자가 혼자 만들어 가는 과정이 아니다.

내담자와 함께 하나의 방향을 그리고, 그 방향을 어떻게 걸어갈지 계속 고민해 가는 협업에 가깝다.

그 과정 속에는 공감과 지지, 격려, 경청 같은 방법들이 있겠고, 조언은 종종 그보다 뒤에 따라오는 일이겠지.


사실 나 역시 이러한 생각을 작성할 만큼의 경험이나 역량이 가득차지 않았고,

여전히 배우고 있고, 여전히 모르는게 많으며, 여전히 노력하는 하나의 수련생일 뿐이다.

언제쯤 이 배움과 연구가 끝날까? 라는 말에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은 이렇다.

"관 속에 들어가기 전쯤"


아마 모든 직업이 그러지 않을까?

지속적으로 사회 흐름에 발 맞추어야 하며, 배워야 하며, 연구해야 하는 길.

비단 심리상담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지 전문가가 되려면 응당 해야 할 과정일 뿐.


하지만 계약직 자리가 즐비하고 파트타임 2-3번을 뛰어야 겨우 200을 받는,

하지만 자격은 석사 이상과 업계에서 인정 해 주는 사설학회 전문자격증 2급 이상이 아니면 장벽을 허용하지 않는 상향평준화 된 현 바닥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인풋에 많은 노력을 쏟는가?

그리고 공공기관의 정규직에 운 좋게 들어가 200만원 초반에서부터 시작하는 경력은 5년 이상이면 고인물이라며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이 바닥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는가.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내담자가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그리고 여전히 사회에서 삶에서 내 안에서 방황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그냥 지나치기에는 사람을 사랑해서 노력을 쏟는 거겠지. 내 살이 깎이더라도.


그래서 우리는 상담이라는 개미지옥 같은 세계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배움의 과정은 늘 험난하고 날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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