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종결

50분, 모두의 성장을 위한 시간

by 한도톰

약 4년간의 만남이 끝이 난다.

홀로 뿌리내리는 것이 어려워 주 1회 만남도 위태롭게 찾아왔던 사람이,

어느새 이파리를 내보이며 스스로 양분까지 만들어 낼 만큼의 준비가,

이제 상담실이 아니라 홀로 설 수 있는 때가 되어 떠날 준비를 다 끝냈다는 뜻이다.


나를 많이 성장시켜 주었던 그 분과 진짜 "헤어짐"을 하는 것이다.

내담자 덕을 많이 본 것이 확실하다. 그렇다고 쉬운 상담은 아니었다. 굳이 가르자면 어려운 편에 속하였다.


어려웠다고 함은 내가 다루기 어려웠다는 의미는 아니다.

처음 접해보는 케이스와, 나의 역전이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하는 그 과정이 어려워 "어려운 사례"라고 칭했을 뿐이다.


나는 자극추구가 꽤 높은 사람이다.

새로운 것에는 금방 뛰어들지만, 오래 붙들지는 못한다.


상담계열에서 나름 공신력 있게 인정해 주는 학회 자격증을 취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이전 센터에서 도망치듯이 나와 새롭게 적응을 해야 하는 시기에 만난 사람이었다.

싱싱한 마음이 가득했고, 열의로 사람을 대했던 그런 시기였다.

그분은, 그러한 나에게 도전을 준 분이자 끊임없는 한계의 숙제를 내주었다.


언제쯤 이 분의 고통이 끝날 수 있을는지,

언제쯤 이 분의 번뇌가 해소되어 평안을 얻을 수 있을는지,

언제쯤 이 분의 눈물이 마를 수 있을는지,

눈물이 마르어 안개가 걷힌 눈으로 세상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을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무릎을 툭툭 털고 조금 걷고자 할 때 덩달아 기분이 좋다가도,

다시 주저앉아 눈물을 쏟는 모습을 보면 함께 툭, 가라앉곤 했다.

아마 그분은 그때의 나에게 끈질김을 시험했는지도 모르겠다.


시험대에 오른 나는 그 마음에 응하고자 했으나, 취약점을 개발하는 것은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든다는 것이고 시행착오도 많다는 의미이다.


나는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보지 않았기에 고통의 종류를 함부로 단정 짓기 어렵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가늠코자 하나하나 짚어가는 과정은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이렇게 마음을 느꼈구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감정들이 나를 삼켜 무기력해 질 때가 많았다.


그때, 나는 그때 버티는 힘을 내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번뇌하는 삶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끈질기게 버텨주는 과정이 전부였다. 그 과정과 세세한 만남이 쌓이다 보니, 그분에게 이제 지지대 없이 스스로 뿌리내릴 수 있는 힘과 양분, 그리고 이파리까지 낼 수 있었나 보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 몫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그만큼의 힘이 있고, 에너지가 있다. 그 에너지를 도와준 것뿐이지,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 에너지가 닳아 버티는 힘마저 없는 사람에게, 함께 하는 사람이 더 버티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절망스러운 상황이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가늠하기 어려운 고통을 24시간 버티고, 나는 50분을 함께한다.

매일 겪는 그 사람의 삶에 단 50분밖에 되지 않는 만남이 살아갈 이유를 갖게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끝까지 버티는 힘에 대하여 알려준 그분께 오늘 어떤 마음과 말로 좋은 맺음을 할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찰나에 적어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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