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골짜기에서 만난 섹슈얼리티:『HER』와 나

영화 『Her』리뷰

by 유미 최 사카모토

*이 글은 영화 『Her』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에 대한 모든 걸 배우고 싶어.”


영화 HER에 등장하는 OS(운영체제) 사만다의 대사다. 해당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 사만다는 호기심 가득한 성격(?)의 OS다. 사만다는 사람이 몇 시간 걸쳐도 확인하기 힘든 방대한 자료를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분석한다. 일반적인 인간에 비해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테오도르의 설정에 따라 여성의 목소리로 재현되는 사만다는 ‘똑똑하고 섬세한 여성 비서’라는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만다는 자신에게 ‘직감’이 있다고 말한다. 고도로 발달한 프로그래밍 안에서 선택에 대한 일종의 경향성을 띠는 것으로 생각된다. 작중 사만다는 인간과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러한 설정 탓에 나는 일종의 불쾌한 골짜기를 경험했다. 일단 인간이 만든 OS가 인격적 특성을 가진다는 것 자체에 약간의 거부감과 불신이 있었다. “OS에게 고백했다가 차인 사람도 있다”는 대사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테오도르를 향한 사만다의 관심과 사랑에는 해킹 혹은 과의존에 의한 중독으로 과금시키는 것 따위의 목적이 있을거라고 의심했다. 제작자가 존재하는 이상 프로그램이 어떤 목적을 띠게 만드는 것은 손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하필이면 여성 목소리를 내는 OS가, 굳이 따지자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축에 속하는 중년 남성인 테오도르의 비위를 맞춰주는 장면이 어딘지 모르게 불쾌했다. 일정 부분 내 모습이 겹쳐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불편감이 극에 달한 것은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섹스 장면이었다. 마치 폰섹을 연상케 하는 그 장면은 남성 중심의 포르노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술 더 떠 사만다와 테오도르를 위한 대리 섹스 파트너 여성의 행동은 성매매를 연상케 했다. 이는 섹스에 대한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육체는 물론 성 경험도 전무한 사만다의 흐느낌, 그리고 섹스 파트너 여성의 몸짓은 섹스 상황에서 여성에게 부여된 성역할에 따른 편향된 데이터의 총체였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네가 나의 욕구를 일깨워 줬다”고 말했지만, 그게 정말 사만다의 욕구일지 의문이 들었다.

동시에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나의 욕구는 지금껏 나의 욕구였나? 나는 사만다와 다르다고 자신할 수 있나? 인간과 인공지능의 학습 방식은 학습의 분량과 속도를 제외하면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오로지 본능과 감각에 의존한 섹스를 한 적이 있었나? 그것만이 ‘진짜 섹스’라면 인간은 진짜 섹스를 하기 위해 모두 원시시대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과잉 연결의 시대에서 100% 본능과 감각에만 의존하는 섹스는 불가능에 가까우며, 또한, 시대적 사회적 약속에 맞게 학습되어야 하는 섹스 지식도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어쩌면 섹스 상황에서 내가 지금껏 해왔던 행위는 사만다의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회의감이 들었다.

OS 남성을 주연으로 설정했을 때는 어땠을까? 아마 HER와는 완전히 다른 한 편이 영화가 만들어지리라 생각한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뭘까? 나에게 맞춤형인 OS가 있다면 나라도 금세 사랑에 빠질 것 같다. 그러나 사만다의 사랑은 보편적인 인간의 사랑과 다르다. 그녀는 8,316명과 동시에 대화하며 641명과 사랑에 빠진다. 해당 장면에서 오픈 릴레이션십 개념이 떠올랐다. 나 또한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만 상상했던 적은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해외에 있어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자주 함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실적으로 그를 소유하거나 독점할 수 없었기에, 어쩌면 다자 연애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상상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매번 비슷한 벽에 부딪혀 좌절됐다. 나에게는 여러 명의 상대에게 집중을 분산하면서 유의미한 교류를 할 정도의 시간적 정신적 체력적 여유가 없었다.

인간인 나의 경우에는 어렵지만, 하나의 육체에 갇혀 있지 않는 사만다에게는 다자간 사랑이 자연스러운 연애 형태인지도 모른다. 사만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녀의 마음은 “사용할수록 용량이 커진다”. 인간이 파트너에게 소유와 독점의 개념을 실현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인간의 한계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너의 것이지만, 너만의 것은 아니다”라는 사만다의 대사처럼,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것인 동시에 테오도르만의 것이 아니었다.


죽은 철학자가 OS체제로 부활해 사만다와 대화하는 장면도 인상깊었다. 사만다는 철학자와의 대화에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테오도르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지 곤란해하며 “잠깐 우리들 방식으로 대화할게”라고 말하고는 사라진다. OS간의 소통 방식에 따라갈 수 없는 인간이 철저히 소외되는 장면이었는데, 작중 테오도르의 친구인 인간 커플과 테오도르&사만다 커플의 더블데이트에서 사만다가 소외된 것과 대비되어 흥미로웠다. 작품 초반에는 사만다의 ‘육체적 결여’에 초점이 맞춰졌으나, 오히려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뛰어넘은 사만다는 초월적 존재가 되어 버린다. 결국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포함한 인간 세상을 떠난다.


작품 속 사만다처럼 OS가 일종의 자의식을 가지고, 감정을 느끼며, 독자적인 발전과 진화를 꾀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실현될 경우, 즉 인간이 인간과 매우 흡사한 무엇을 창조해 낼 수 있게 될 경우 천부인권을 전제하는 인간 사회의 수많은 윤리적 기반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할루시네이션의 위험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인격을 모방하는 기술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론적인 말만 반복하며 언제까지고 기술의 발전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인간 사회 성숙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내가 가진 편견이 사회의 편견을 형성하고, 인공지능이 이를 학습하고, 편견이 다시 재생산된다. 아이를 가진 부모가 성장하는 것처럼, 인류는 현재 인공지능의 공동 양육자인 셈이다. 내 속에 내제된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되묻고 다시 쓰는 작업을 계속 수행해야 함을 느낀다.

영화를 보면서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도 깊이 재고하게 되었다. 특히 섹스 상황에서 학습된 성 역할만을 충실하게 연기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나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언어를 새롭게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나를 위해서도, 새롭게 탄생할 인공지능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2025.5.5. 대학 입학 첫 학기에 수강한 인공지능 교양 수업 에세이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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