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시절
나에게는 조금 특별한 엄마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습니다. 우리 엄마 같은 엄마를 가지고 있어서.
초등학교 때 나는 노는 것을 엄청 좋아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도 집에 갈 줄을 몰랐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밤이 깜깜해지고 나서도 한참을 더 놀고 나서야 집에 들어갔지만 엄마는 나를 항상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잘 노는 것이 대견하다며 나를 보고 흐뭇하게 웃어 주셨습니다.
5학년 때 기억이 납니다. 학교를 마치면 친한 친구 두 명과 책가방을 운동장 한편에 던져둔 채 이런저런 놀이를 하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일상이자 행복이었습니다. 며칠 째 같은 놀이도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기도 했으며 재밌는 시간을 보내기도 그냥 어리둥절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냥 그 운동장에서 같이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 멀리 누군가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데 난 조금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알고 보니 친구 엄마가 화가 잔뜩 나서 친구에게 소리치며 혼내고 친구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매번 말없이 학교 끝난 시간이 한참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 아들이 못마땅하셨나 봅니다. 아들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엄마가 화를 내는 모습도, 논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모습도 나에게는 모두 낯선 풍경이었습니다. 그 시절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학교 숙제도 해야 하고 전교 순위를 매길 정도로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를 신경 쓰던 분위기였기에 부모님들은 자식들이 하릴없이 운동장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어른들 눈에는 낭비되는 시간처럼 보였을 것이니까요. 친구들은 하나둘씩 엄마들에게 불려 갔고 마지막까지 자유롭게 놀 수 있던 나를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너네 엄마 같은 엄마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운동장에서 자기 엄마한테 혼난 그 친구는 나를 부러워합니다.
친구 엄마들과 다른 엄마를 보며 왜 엄마는 저렇게 안 하냐고 물어보자 엄마는 말했습니다.
"넌 알아서 잘 하자나. 엄마는 널 믿어."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워낙 노는 것을 좋아해서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했던 내가 뜻하지 않게 중학교 입학시험이었던 반 배치 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었습니다. 처음으로 인정이라는 것을 받아 봤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공부란 것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나는 공부란 것을 한번 제대로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공부는 막상 해보니 재미있었습니다. 특별한 어려움이 없이 난 항상 반에서 1, 2등을 했었고 전교 20등 안에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한다는 아이들과 함께 했던 물리 과외를 할 때는 그 친구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혼자 풀고 나서 다른 친구들이 해답을 찾는 동안 쉬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었지요.
어려서부터 막연하게 과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어린 시절 엉뚱한 호기심이 가득한 에디슨이 발명왕이 되는 위인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수학과 과학을 엄청 좋아했었고 좋아한 만큼 잘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옆 동네의 학원에서 수학 실력으로 꽤 유명해지기도 했었으니까요.
하지만 계속 재밌고 잘 될 것만 같은 공부에도 곧 위기가 왔습니다. 재미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그렇기에 하고 싶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명확하게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평생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줬으니까요. 국어, 영어, 한문 등의 과목은 정말로 지루했습니다. 2학년이 되고 그 과목들을 점점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목들을 공부하는 것은 내 인생 하등 필요 없어. 난 이런 거 안 하고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들이 점점 나를 지배하였고 어느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공부만 해도 된다고 내 생각을 합리화해 버렸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은 건지 아닌지 내 마음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의 제도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혼자만의 독단적 생각을 펼치고 있는 이 어린 청소년은 어떤 면에서는 분명 한심한 존재였지만 엄마는 아들의 방황이 안타까웠습니다.
"과학고에 가면 네가 좋아하는 수학과 과학만 할 수 있어."
"거기 가려면 지금 모든 과목을 다 공부해야 하잖아. 어차피 다 똑같아."
"외국에서 공부해 볼래? 거기 가면 네가 원하는 과목만 선택해서 공부할 수 있데."
엄마는 아들을 위해 모든 방법을 생각해 냈고 난 유학을 떠났습니다.
우리 집은 유목한 편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누나와 방을 따로 쓸 수 있을 정도의 넓은 집에서 살았고 먹는 것, 입는 것 등으로 고민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캐나다로의 유학은 우리 형편에 부담스러운 현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들이 원하는 그 일을 추진하였습니다. 아빠를 설득해야 했고 유학 비용을 마련할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엄마는 아들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해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하기 싫은 일들을 해야만 합니다. 안타깝게도 난 그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 자식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본인이 직접 챙겨야 했던 엄마 때문이었습니다. 엄마의 교육 방식에 난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을 직접 겪어보고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러지 못했기에...... 그래서 난 세상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많이 힘들어했기에. 그래서 난 내 자식에게 엄하게 굽니다. 하기 싫은 일들도 참아 내고 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나와는 달리 강하게 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의 교육 방식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힘들 때마다 나의 편이 되어준 엄마를 보면서 적어도 이 세상에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사람이 있기에 그 기대가 있기에 나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