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반짝 여유롭더니 계속 일이 생긴다. 아침을 먹고 난 뒤 계속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간호사에게 쫓아갔다. 병원이 예전처럼 메인에만 간호사실이 있는 게 아니고 각 방에 담당제를 정해 세 병실을 두 명의 간호사가 담당한다. 그래서 간호사가 가까이에 있어 참 좋다. 환자가 열이 있는듯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했더니 즉시 달려와서 열을 재어본다. 37.7 미열의 시작이다. 37.5를 넘어서면서부터 열이 난다고 하는 것 같다. 얼음주머니를 해 주라 해서 얼음을 담아 왔다. 지난번 열이 난 이후에 다시는 안 쓸 줄 알았는데. ㅠㅠㅠ
열이 조금 내렸다. 37.4. 점심을 앉아서 먹고 다행이다 싶어 조금 더 앉혀 놨다. 딸이랑 통화도 시키고 시간을 끌다 재웠는데 떨어졌는가 싶었던 열이 다시 올랐다. 당직의사가 와서 정 OO 씨 어디 아파요? 하니깐
"안 아파요" 하면서
"죽을 거야". 이런다.
그러다가 배를 끌어안고 "아이고 배야" 나의 휘둥그레지는 눈과는 달리 의사 선생님은 태연하다. 늘 보아온 일인 듯 웃어넘긴다. 이미 환자의 모든 행동들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열은 38.2도. 엑스레이와 해열제 처방이 내려왔다. 당직의사는 결과를 보고 생각해 본 후 처치를 하겠단다.
해열제 맞고 있는데 나도 못 알아본다.
"내가 누구야?"
"정 O영, 정소 O" 딸의 이름과 조카딸의 이름을 댄다. 열에 들떠서 헛소리를 하는것일까, 인지가 열의 제재를 받는 것일까? 열이 더 나는 듯한데 어쩌나 간호사한테 또 달려가야 하나?
마침 간호사가 와서 열을 쟀다.
37.8도
"나도 못 알아봐요", 했더니 다시 묻는다.
"환자분 이름이 뭐예요?"
"정 OO요."
"여기 계신 분은 누구세요?"
"조인수."
"아까는 왜 정 O영 정소 O 그랬어?" 헷갈렸단다.
열 때문에 헛소리를 한 건지, 뇌출혈 환자의 일상인지? 평소 남편과 다른 행동과 말에 메모를 안 할 수가 없었다.
머리에 수술한 곳이 가려운지 자꾸 모자 위를 긁더니 슬슬 눈치 보면서 모자를 벗는다. 언제 긁었는지 피가 줄줄 흐른다. 주사 바늘도 뽑으려고 하고, 실랑이 할 일이 또 늘어난 것이다. 이런 급박한 일에도 웃지 않을 수 없다. 앞 침상에 있는 남편보다 한 달쯤 일찍 들어와 있는 환자도 똑같이 모자를 벗어 피를 흘리며 아내한테 혼나고 있다. 비슷한 아픔과 비슷한 가려움이 함께 하는가 보다.
밤새 남편은 선망에 시달렸나 보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남편을 지키지 못했다. 계속 배가 아파서 화장실 가야 한다는 말을 무시 했다. 두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는데 자다 보니 남편이 신발을 신을 기세로 침대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깜짝 놀라 뭐 하는 거냐며 남편을 눕혔다. 자꾸 헛소리를 하며 나를 처음 본 사람 취급한다. 아마도 어제와 오늘을 분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남편이 다행히도 처음으로 변기에 앉아 변을 본 날이다. 입원실로 온 지 12일 만이다.
환자에게는 잘 먹이는것도 중요하지만 잘 빼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제 처음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서 화장실 변기에서 많은 변을 봤는데 오늘 또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을 가겠단다.
"자기 잠잘래? 똥 누러 갈래?
"잠 누러 갈래.." 그러더니 쪽 누워 버렸다. 언어의 선택도 뒤죽박죽이다.
작업치료 시간이 2시부터 인데 그 시간에 화장실을 가겠다고 할까 봐 미리 서둘렀다.
"자기, 똥 안 마려워?
배 아프다고 바로 화장실을 가겠단다. 잠 누러 갈래는 잠도 자고 싶고, 화장실도 가고 싶다는 표현을 한번으로 줄여서 한 건지 빨리 화장실에 가야한다고 독촉이다. 휠체어로 옮기는데 바쁘다. 항생제를 맞고 있어서 그것도 휠체어 걸이에 걸어야지. 소변줄도 챙겨야지.. 신발도 신겨야지... 어렵사리 휠체어로 옮기려는데 거의 뚜벅뚜벅 자기가 옮겨 탄다. 걱정스러워서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 다른 것들을 챙기는데 혼자 휠체어 바퀴를 굴려 나간다. 운전하듯이 몸에 익힌 습관이라 휠체어 바퀴를 굴리는 일 들은 학습된 기억이 남아 있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