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쯤 되니 눈물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그날, 나는 오래 묻어두었던 슬픔을 다시 마주했다.”

by 최서리



최근에 친구들과 제주도를 다녀왔다. 감귤 색깔의 따사로운 햇빛이 비치는 카페에 앉아 별것 아닌 이야기들을 하다가, 한 친구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늘 밝고, 생기 넘치고,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처럼 보이던 친구였다. 오래 사귄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뵙고 온 이후로 관계에 진전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결혼에 조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쉽지 않다고 했다. 어쩌면 자기는 지금 당장 결혼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오랫동안 결혼을 꿈꿔왔던 사람이였기에 그 말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조용히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아주 천천히 친구의 심연으로 흘러갔다.


친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 속에서 자랐다. 그것은 우리가 대학생 때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였다. 그녀는 본인의 아픔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밝고, 사랑을 많이 받은, 아무런 결핍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스스로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고.


시간이 흘러 많은 것들이 전보다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해도 집에 경찰을 부른 일이 있었다고 했다. 아무 일도 아닌 상황에서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졌고 그 순간 그녀는 다시금 두려움에 휩싸였을테다.


그 날의 이야기를 하며 친구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뒤이어 나의 눈물도 함께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나 또한 친구와 같은 상황 속에서 자라왔고, 20대 중반쯤 부모님이 완전히 갈라서게 되면서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늘 불안에 떨며 자책과 무력감을 안고 살던 나는 지금에서야 조금씩 완전함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겨우 그 곳을 빠져나왔는데, 친구는 아직도 그 안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나를 너무나도 슬프게 만들었다.


친구는 남자친구가 이런 자신의 어두운 면까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길 바라면서도, 그 이야기를 꺼낼 자신이 없어 결혼 이야기가 더는 진전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서른쯤 되니 모든 게 무뎌져 눈물따위 없어진 줄 알았는데,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엉엉 울고 있는 나를 보며 깨달았다.

아, 그렇지 않구나.


그날 밤, 숙소에서 잠을 자는데 내가 “응—” 소리를 내며 잠꼬대를 했다고 한다.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꿈에서도 다른 사람 이야기 들어주고 있는 거 아니지?”


속으로 생각했다.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네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꿈에서라도 너를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고.


산전수전 다 겪어가며 맞이한 서른 앞에서도 같은 곳을 건너온 사람을 위한 눈물만큼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