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쯤 되니 더는 친구를 만들지 않을 줄 알았는데

by 최서리


지난주에 친구와 추어탕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20대의 끝자락에서 고등학교 동창의 소개로 인연을 맺게 된 친구라 알고 지낸 시간이 아주 길지는 않았고, ‘친구의 친구’라는 관계가 주는 미묘한 거리감도 있었기에 1년만에 만나 둘이서 저녁을 먹는 일이 내심 긴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추어탕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긴장은 곧 사라졌다. 마주 보이는 친구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화색이 돌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반가운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우리는 금세 자리에 앉아 깍두기를 썰고 뜨끈한 국물을 먹으며 그동안 각자에게 있었던 일들을 편하게 나누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내가 좋아하는 바에 친구를 데려갔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책들을 보며 대화는 자연스럽게 책과 영화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의 최애 영화가 <인터스텔라> 라고 하니

친구가 벅찬 말투로 말했다.

“인터스텔라, 그거 SF장르 아니고 아니라 가족 이야기잖아. 그치?”


그녀와 내가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알아차린 그 순간,

나는 또 다시 녹아내려버렸다.


대화를 깊게 이어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차이점도 발견했다.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기록하려 애쓰는 나,

그리고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고 집중하려 애쓰는 그녀.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여백과도 같은 것에 가까웠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그녀가 예전 일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동창이 언젠가 우리에게 ”너희 둘이 자주 만나?“ 라고 물었는데,

그 때 내가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만나고, 별일 없으면 안 만나.”

이렇게 대답했다고.


니 말대로라면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서로에게 별일이 없었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그래서 별 일이 없어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오늘이 너무 좋다고 했다. 폭풍과도 같이 휘몰아치던 20대의 끝자락에서 우리를 만나게 해준 고등학교 동창에게 고맙다는 말도 덧붙이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서른을 맞이하며 정리를 거듭하고도 아직 남아있던 요란한 마음이 마침내 정돈되는 기분이 들었다. 서로가 무사했다는 것,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 이렇게 다정한 안부가 될 수도 있다니.


우리는 정말로 서로 비슷한 시기를 지나고 있구나.


이 나이쯤 되면 깊고 오래된 관계가 이미 충분히 만들어져 있기에, 더 이상 새로운 친구가 생기는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같은 온도로 시간을 건너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관계는 여전히 자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서른 이후의 관계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만 조용해질 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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