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승용차로 출퇴근을 하는 나에게도 가끔 지하철과 도시철도를 이용해서 출근길을 나설 때가 있다. 나는 뉴욕 맨해튼의 빌딩 숲 못지않은 파리의 라데팡스(La Défense)에 살고 있는데, 덕분에 출퇴근 시간이면 믿기 어려울 만큼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몰려가고 몰려오는 모습을 자주 만나게 된다.
지난 12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이 날도 역시 사람 구름에 떠밀려 저절로 둥실둥실 발걸음이 날아가고 있었다. 모두들 언제나처럼 바쁘게 걸었고 나 또한 습관처럼 연신 시계를 바라보며 무심코 지하철 입구로 다가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현악기 고르는 소리가 내 마음의 문에 노크를 하는 듯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시계를 바라보던 고개를 들고 살짝 두리번거렸다.
아!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곧 지하철을 타기 위해 총총거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줄줄이 이어진 행렬에서 빠져나왔다. 오늘 아침 5분, 모든 걸 멈추고 나를 위한 음악회를 즐겨보려고 말이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처럼 파리는 지하철 역 마다, 그리고 지하철 열차 안에도 악사들이 참 많다. 보통 허름한 옷을 입고 때로는 노숙자와 구분이 잘 안될 정도로 초라해 보이는 거리의 악사들이지만, 그분들 모두 두 허가받은 연주자들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훌륭한 연주를 만나는 경우도 자주 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만났던 가장 인상 깊었던 연주도 바로 이 곳 라데팡스 역이었다. 벌써 7-8년쯤 전이었나 보다. 너무나 사랑하는 파헬벨의 '캐논의 변주곡'이 갑자기 울려 퍼지기에, 어느 상점에서 음악을 크게 틀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소리가 조금 달랐다. 귀를 기울이며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글쎄 바로 그 허름한 옷을 입은 거리의 연주가들이 한데 모여 오케스트라처럼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각자 자신들의 지하철 역으로 이동하기 전 오전 9시, 각기 다른 악기를 손에 들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 하루를 시작하는 연주를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거리의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그야말로 그 어떤 교향악단 못지않게 훌륭했다.
이제는 거리에서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오케스트라를 만나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때만큼의 환희로 벅차오르지는 않지만, 바로 지난 12월 아침에 만난 이 연주자들은 그 첫 경험만큼이나 내 마음을 홀딱 빼앗아가기 충분했다. 공해로 인해 승용차 홀짝제를 시행하느라 모든 공공교통수단이 무료인 날이었던 만큼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중 또 역시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함께 아침음악회를 즐겼다.
아침 5분은 한낮의 30분에 버금가는 황금 같은 시간이지만, 나는 지하철을 놓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현란하게 바이올린과 한바탕 춤을 추는 것 같던 연주자,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멈춰 서서 함께 음악을 즐기고 함께 환호성을 지르고 함께 박수를 치면서 마주 보며 웃던 모르는 타인들, 그 꿈같은 5분이 지나고 모두 다시 각자의 행선지로 향했지만, 그 마음만큼은 멈춰 서기 5분 전과는 전혀 달랐다. 우연히 만나 함께할 수 있었던 5분간의 작은 이벤트로 인해 마음이 아주아주 부자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줄줄이 밀려가는 일개미 같은 일상에서 잠깐 이탈해 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살짝 딴 길로 샌 곳에서 의외의 이벤트를 만나 마음이 행복해질지 모르니까.
세상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